어른이 될수록 침묵하는 이유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일기 2
교사가 되고 나서 학생들에게 제일 많이 하게 되는 말은 '조용히 해'인 것 같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말이다. 술자리가 시끄러워 옆 테이블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일행에게 소리 좀 낮추자고 제안할 때 빼고는 거의 쓸 일이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첫 학기 첫 시간부터 줄곧 '조용히 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나에겐 외모와 목소리 만으로 아이들을 제압할 카리스마가 없었다. 게다가 권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나의 성격상, 아이들의 웬만한 행동은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수업 중에 엎어져 자도, 과자를 먹어도, 화장실을 간다고 해도 그냥 허용했다. 애들이 자면 '수업이 재미없나 보다, 피곤한가 보다' 생각했고, 음식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면 '생리적 현상이니까'하며 허용해 줬다. 친구와 잠깐잠깐 나누는 대화도 나는 그냥 넘어갔다. 다 사람 사는 일인데, 50분 내내 수업에만 집중하라고 하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사실 교사들도 교직원 연수 때 아무도 집중을 안하...)
내가 이렇게 널널한 태도로 나오니 아이들은 내 수업에서 행동이 점점 자유로워졌다. 활기차게 소통하는 국어수업을 원해서 그런 거였는데, 아이들은 수업과 상관없는 이야기로 떠들어댔다. 짝꿍, 앞뒤, 양옆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분단을 초월해서도 '소통'을 이뤄냈다. 교실은 곧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는 조용히 하라고 몇 번씩 소리쳐야 했다. 하지만 이미 풀어질 대로 풀어진 반 분위기를 다시 잡는 것은 이별을 통보한 애인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처럼 불가능했다.
이렇게 시끄러운 환경 때문에 공부 좀 하는 친구들은 내 수업이 불만이었나 보다. 학년 말, 학생들에게 받은 교원평가에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조용히 시켜달라는 요구가 공통적으로 적혀있었다. 어떤 학생은 '선생님은 너무 착해서 큰일이다. 애들을 좀 혼내셔야 한다'며 걱정 어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학교를 답답하게 여길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한 나의 허용적 태도가 결국엔 '방관'이란 결론을 낳았고, 학생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나는 그제야 '학교는 답답한 곳'이라는 나의 편견에만 매몰되어 '교사로서의 본분'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 선생 덕분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은 아이들의 학습권이 침해된 상황. 나는 곧 엄청난 부끄러움을 느끼며, 앞으로는 교사로서의 직분에 충실하자는 다짐을 했다.
이듬해부터는 학생들에 대한 통제력을 점점 높여갔다. 원활한 수업 진행을 위해 수업 예절을 갖출 것을 요구했고, 규칙을 잘 따라주지 않는 학생에게는 화를 내기도 했다. 오히려 화를 너무 내서 상처 받은 친구들이 있을 정도였다. (*'교사의 분노조절 성장 단계'를.......써야 할 것 같다;)
4년 차인 지금은 신규 때와 달리 학생들을 제법 통제할 수 있다. '조용히 해'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도 수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교직을 통해 스스로 성장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요령'이란 이런 것이군 하며 우쭐댔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의 수업시간에, 나는 또 '조용히 해'라는 말을 하며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그날은 '독서' 시간이었는데, 자신이 읽을 책을 미리 가져오라고 안내했지만, 책을 가져오지 않은 친구들이 꽤 되었다. 그 친구들은 책이 없으니 딱히 할 일도 없고, 선생님이 수업도 하지 않으니 그냥 옆의 친구들과 열심히 떠든 것이다.
물론 나는 모든 학생들이 책을 준비해 올 수 있도록 더 철저하게 준비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책을 읽는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환경'만큼은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규 때의 실수를 또 저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아이들은 꼭 교사가 '화'를 내야지만 분위기를 파악한다. 나는 소리쳤다.
"얘들아, 좀 조용히 좀 해! 책을 안 가져왔으면, 다른 공부를 하거나 조용히라도 해야지! 열심히 책을 읽는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니까 떠들지 좀 마!"
순간 교실 분위기는 싸해졌다. 아이들은 본인들이 잘못한 것을 알기에 반항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방긋방긋 웃으며 치근대던 아이의 눈빛이 금세 위축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니 조용히 하라는 말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 어떤 아이의 존재를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방해되는 존재'로 규정했다. 누구의 존재가 누구에게 '방해'가 된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방해가 되면 가볍게 치워버려도 된다는 것인가? 내게, 친구와 소통하고 싶은 아이들의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생명력을 막을 권리가 있었던가? 나는 금세 얼굴이 달아올랐다.
원래 말을 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다. 친구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소통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정작 아이들의 삶에서 중요한 문제인 교우관계, 이성친구, 놀거리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데, 그런 아이들의 활기와 생동감을 억지로 수업 장면 속에 가두고, '조용히 해'라는 말로 아이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해 좋은 것일까?
아이들이 떠들 때뿐 아니라, 수업 장면에서도 학생들의 발언은 제한된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아이들은 선생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 조잘조잘 말을 잘 하지만, 대학에 가야 하는 인문계 고등학생이 될수록 수업 시간에 대답도 하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고, 발표도 꺼려하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 정답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위해? 개인적인 궁금증이 생겨도 전체 수업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무엇을 위해? 발표를 하면 선생님이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하니까.
이쯤 되면 아이들은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서서히 침묵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의 공식적 교육과정을 거치며 은연중에 배우게 되는'*잠재적 교육과정'은 다름 아닌 '침묵'인 것이다.
(*잠재적 교육과정 : 학교에서는 의도하고 계획 세운 바 없으나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에 은연중에 가지게 되는 경험 - 교육학 용어사전)
이런 과정을 겪으며 어른이 된 우리들이기에, 회사에서 회의만 했다 하면 상사 앞에서 몸을 사리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보게 되는 것 아닐까? 교사나 상사에게 허용되기 위한 말만을 고르다 보니,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내면'의 목소리를 삼켜버리고 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제 글에 관심을 가지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브런치 톡채널에서 제 글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하게도 너무 많은 관심을 받은 것 같습니다. 많이 부족한 개인적인 생각이었는데도 공감해주시고 응원 주셔서 너무 행복하고 얼떨떨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일일이 댓글을 달아드려야 하는데, 평일에는 시간이 잘 나지 않아 마음에만 쌓아두고 있습니다. 주신 모든 댓글 다 새겨듣고 천천히 답장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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