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자기 자식을 일반고에 보내지 않는다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 일기 8
제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대학 4학년이던 시절에 겪은 비슷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자 한다. 평소 내가 존경하던 교수님이 계셨는데, 한국 사회의 '교육 격차' 문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진짜 공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해 주시던 분이었다. 교수님의 철학에 매료된 나는 교수님의 제안에 따라 연구실로 들어가 대학원 선배들과 함께 스터디를 했다. 교수님을 따라 갑갑하게만 느꼈던 '학교 안의 교육'을 버리고 학교 밖에서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허례허식을 비판하고,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신(新) 지식인'의 면모를 풍기던 교수님은, 연구실에서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구실의 위계질서를 중시했고, 군기 같은 것을 잡으며 학생들을 혼내기도 했다. 나중에는 선배 언니에게 종교까지 강요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또 그 당시 교수님에겐 고등학생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공교육을 위해 헌신하던 교수님은 자제분을 유학 보내기 위해 준비 중이셨다. 유학 관련 서류 때문에 아빠의 연구실에 방문한 교수님의 아들은,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대학생 누나, 형들에게 인사도 한 번 하지 않고 자기 볼일만 보고 연구실을 나갔다. 나는 그때 교수님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교수님 또한 앎과 실천이 따로 노는 지식 장사꾼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결국 교수님에게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1년 만에 연구실을 터덜터덜 나왔고 어찌어찌하여 다시 '학교 안의 교육'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는 차라리 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라는 시스템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공고했다. 나는 바쁜 행정업무들에 치여 학교 혁신이건 뭐건 그냥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비담임을 맡은 선배 교사들은 하나같이 권태로웠고, 담임을 맡은 신규 교사들은 하나같이 바빴다. 내 또래의 교사들과 함께 하소연을 해봐도, 그냥 업무가 힘들 뿐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그들은 학교 시스템의 수혜자들이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사범대에 진학했고, 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교사가 되었다. 학교에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을 테니 입시 위주 교육의 부당함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교사들 사이에서 미운 오리 새끼라도 된 것 같았다. 학교 교육엔 문제가 없고, 그냥 그것을 문제 삼는 내가 문제인가 싶었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 나는 재미있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중학생 자녀를 둔 선배 교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자기 자식을 외고나 과학고, 예고에 보내려고 안달 나 있었다. 자신은 일반고에 몸 담고 있으면서 자기 자식은 특목고(특수목적고등학교)에 보내려고 하다니! 그래, 이 정도면 공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셈 아닌가?!
일반고에서는 얻지 못하지만, 특목고에서는 얻을 수 있는 것. 한국의 공교육에서는 얻지 못하지만 외국 유학을 가면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대학 간판을 따는데 도움이 되는 교육 환경'이다. 특목고 학생들은 '공부'의 도구적 유용성을 잘 아므로, 수업 분위기를 흩트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실력도 비슷하게 형성되어 있으므로 교사도 수업을 진행하기가 수월하다.
내가 지금 있는 학교는 비평준화 지역의 인문계 고등학교로 성적이 중하위권인 학생들이 오는 학교이다. 내신 등급을 따기 위해 일부러 자기 수준보다 낮게 지원해온 학생들 몇 명만 좋은 성적을 받아가며, 나머지 학생들은 공부에 그다지 관심도 없이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다. 수준이 너무 다른 학생 구성 때문에, 수업을 준비하기가 참 애매하다고 생각했었다. 특정한 그룹에 맞춰 고난도로 가르칠 수도, 쉽게만 가르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수준별 이동 수업'은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므로 폐지 되는 추세다. 학생들을 우열반으로 나눠서 열등감을 조장하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공부에 관심이 없으면서 목소리가 큰 아이들은 수업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일반고가 하향 평준화가 되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물론, 단지 '성적'의 관점에서만 하는 이야기이다.)
아무래도 일반고의 수업 환경이 이렇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 일반고 교사이기 때문에, 내 자식은 좀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 특목고에 보내는가보다. 그리고 특목고에 보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 '간판'을 따게 하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나는 그 대학 간판의 무의미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미 트랙 안의 삶을 포기했으니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지도 못하면서 경쟁만을 위해 달려가는 삶의 위험성을 몸소 체험했으니까.
'자아'에 대한 진지한 탐색 없이 대학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학생들과 수업을 했던 적이 있다. 나의 진로 결정 과정에 대한 글을 예시로 들며, 학생들에게 '자신의 진로 선택 과정에 대한 반성적 쓰기'를 시켰다. 여기에 우리 학교 최상위권 친구의 글을 조금 다듬어 소개하고자 한다.
'꿈'이라는 말이 '미래에 가지고 싶은 직업'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학교에서, 나는 꿈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것이 가끔은 나를 압박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올라올 때 특히 그랬다. 막연히 가지고 있던 ‘음악 교사’의 꿈을 피아노를 그만두면서 함께 접었던 나에게, 생활기록부를 진로와 관련된 활동으로 꽉꽉 채워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고등학교는 ‘꿈’을 정하라는 무언의 재촉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비단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부모님도 덩달아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들을 추천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초등 교사인 이모의 입김이 불어왔다. 내 진로를 걱정하시던 엄마에게 이모는 “OO같이 뭐든지 두루두루 잘하고, 하고 싶은 거 딱히 없는 애는 초등학교 교사가 최고야”라고 말하셨고, 그 뒤로 엄마는 나에게 ‘초등 교사’를 권하셨다. 육아휴직이 보장되며 경력단절이 없다는 점은 여자에게 정말 좋은 점이며, 방학과 이른 퇴근 시간 덕분에 나의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말씀에 설득 당해 일단 그 길로 정하고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지금도 그 꿈을 간직하고 있는 건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아이들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선생님과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을 함께 읽으면서, 내가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어떤 한계 안에 날 가둬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영향을 준 엄마, 엄마에게 영향을 준 이모,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생각에 영향을 준 어떤 '차별의 흐름'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생의 어머니가 자신의 딸에게 교사를 권하는 이유와, 무려 15년 전 나의 엄마가 나에게 교사를 권했던 이유가 정확히 일치한다. 왜 한국의 모든 엄마는 공부 좀 한다는 딸에게 교사를 권하는 것일까?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직업으로서의 최고봉을 '교사'로 한정해 놓았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육아 휴직, 경력 단절, 방학'과 같은 외부적 조건만을 꼽으며 직업을 추천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를테면 '안전한 트랙 위의 길'을 걸으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학생은 평소에 음악을 좋아했다. 그래서 '음악 교사'라는 꿈도 가졌던 거겠지. 그 학생에게 정말 '초등 교사'를 권해야 했다면 이런 식으로 표현했어야 맞다. "너는 평소에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을 좋아하니까 초등 교사를 하면 어떠니"라고 말이다. (사실 교사의 주된 업무는 '수업' 보다는 '탁아, 혹은 행정'이긴 하지만)
"꿈이라는 말이 미래에 가지고 싶은 직업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학교에서, 나는 꿈이 없는 학생이었다."라는 학생 글의 첫머리가,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꿈은 없고 직업만 있는 사회, 자신만의 고유한 삶은 없고, 보여주기 위한 삶만 있는 사회.
내가 아마도 자식을 낳게 된다면, 나는 내 자식을 '학교' 자체에 보내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친구들과 자연에서 실컷 놀리고, 다양한 책을 읽히고, 악기를 가르쳐주고, 지구 여러 곳을 여행시키고 싶을 것 같다. 아, 여행을 다니려면 '외국어'는 필수니까, 영어 회화 교육은 좀 시키려나. 그런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꿈의 학교'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화를 마무리짓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