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을 위한 행정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 일기 7
학교를 나오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선 나조차도 퇴사를 재고해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일 때다. 아이들은 단지 '선생님'이라는 이유 만으로, 그리고 자기 반의 '담임'이라는 이유 만으로 나를 좋아해 준다. 엄마 아빠가 아무리 못나도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사람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담임이 아닌데도 무조건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아부성으로 그러는 아이들도 간혹 있지만, 아이들은 역시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어서, 진심인지 거짓인지 눈에 딱 보인다.
아이들은 또 선생님이 자신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귀신같이 알아서, 담임이 반에 애정을 가지고 학급 운영을 열심히 하면 아이들도 자기 반을 좋아하고 담임을 잘 따른다. 심지어 담임이 아주아주 중요한 공지사항 전달을 놓쳐도(이를 테면 급식 순서 같은!!?) 아이들은 그냥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준다. 싫은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해도 다 싫어지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나쁜 짓을 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인간관계가 아니던가. 학급 친구들끼리도 큰 트러블 없이 서로 도와가며 일 년 살이를 잘 해낸다.
다른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담임인 나에게 고자질하듯 이야기할 때는 좀 난감하지만, 나에게 그런 얘기를 털어놓는 아이들이 귀여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담임은 우리 편'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동료 교사에 대한 험담을 애들한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그냥 허허 웃어넘기지만, 사실 속으로는 아이들보다 더 격하게 분노하곤 한다.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교사들이 우리 반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나까지 속상해지기 때문이다. 여학생을 대놓고 성차별한다든지, 막말을 한다든지... 비록 체벌이 금지되어 있어도 그런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선생님은 여전히 존재한다.
오히려 그런 선생님들 덕분에, 민주적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나의 지지율은 자연스레 올라간다. 그래서 사실 학생들과 의미 있는 소통을 하며 학교생활을 재미있게 꾸려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학교 시스템은 정작, 나에게 그런 의미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학생들과의 소통, 민주적 가치들을 중시하면 할수록 학교생활은 더 힘들어진다. 명령하고 획일화하고 통제하면 모든 과정을 단시간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도 굳이 먼 길을 천천히 돌아가는 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올해 '창의 주제 캠페인'이라는 명목으로 학급당 10만 원의 예산이 내려왔다. 환경 보호나 학교폭력 예방이나 성교육 등 그동안 형식적으로만 운영되었던 창의적 체험활동을 내실 있게 운영해보자는 것이다. 다른 반에서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10만 원어치의 문구류를 샀다. 우드락, 색상지, 사인펜, 풀이나 가위 등... 찾아보면 학교와 학생들 집에 널리고 널린 것들이다. 학생들은 하루, 단 2시간 만에 '캠페인'과 관련된 자료 조사를 하고, 우드락에 멋지게 꾸며 복도에 전시하였다. 담당 부서에서는 결과 보고서에 쓸 사진을 찍어갔고, 그 캠페인 홍보물들은 그날 바로 철거되어 소각되었다. 그 단 2시간을 위해 학급당 10만 원이 지출된 것이다.
아이들이 꾸민 홍보물에는 환경파괴로 터전을 잃어가는 북극곰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아이들은 알까? 캠페인의 내용과 자신들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런 형식적인 운영이 싫어서 아이들과 실질적인 캠페인을 진행했다. 면역력 증진을 위해 물을 충분히 섭취하자는 '하루, 물 한 컵 캠페인'이었다. 종이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집안에 쓸모없이 굴러다니는 텀블러를 기증받아 '텀블러 나눔 행사'도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스 디스펜서를 구입하여 교실에 비치했다. 아이들은 당번을 정해 복도 급수대에서 물을 길어왔다. 쉬는 시간에 복도를 서성이지 않아도 교실에서 쉽게 물을 구할 수 있으니 아이들은 확실히 물을 자주 마셨다. 예쁜 카페 유리병에서 물을 따라 마시는 것이 재밌었는지 아이들은 물을 따라 마시면서 킥킥댔다. 남은 돈으로는 500미리 생수를 사서 학생들에게 4통씩 나누어주었다. 물론 생수를 다 마시고 나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하지만, 아이들은 물통에서 비닐을 잘 떼어내어 깨끗하게 분리 배출했다.
다른 학급의 10만 원은 2시간 만에 쓰레기가 되었지만, 우리 반에서는 아이들의 목을 축여줬다. 교실에 생수가 잔뜩 비축되어있는 것을 보고 다른 반 아이들이 하나만 달라며 우리 반을 기웃거렸다.
이러한 결과를 위해 우리는 2시간 동안 학급 회의를 진행했다. 30명의 아이들이 각자 30개의 아이디어를 냈고, 그중에서 실천이 가능하고 의미가 있으며, 예산 사용이 꼭 필요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다수결을 통해 선정했다. 나는 각기 따로 놀던 아이디어를 연결시켜 주고, 실제 운영상 필요한 행정 절차를 지원해 주었을 뿐이다.
사실 나는 주스 디스펜서를 교실에 두기엔 파손의 위험이 있고, 아이들이 당번 약속을 잘 안 지킬 것 같아 예산을 전부 생수 사는 데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한 것이라 어쩔 수 없이 구매를 해주었다. 약속대로 운영이 잘 안 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물병이 오자 반장, 부반장이 책임감 있게 나서서 설거지를 하고 물을 길어왔다. 아이들은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너나할 것 없이 같이 물을 길으러 다녔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며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이런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겪고, 자신들이 내건 약속을 실천해본 친구들은 민주적인 태도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담임으로서 아이들과 보람찬 캠페인 활동을 한 것에 대해 나는 뿌듯함을 느꼈지만, 학교 차원에서 보면 나는 그저 '일을 늦게 처리하는 교사'일뿐이다. 담당 부서에서는 우리 반 딱 하나 때문에 결과 보고서 기안문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너그러운 부장님이셨기 때문에 그나마 기다려주셨지, 흔히 말하는 꼰대 부장님 같았으면, 진즉에 한 소리 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냥 하나의 작은 사례일 뿐이다. 사실 학교에서 마감 기한에 쫓겨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업무는 수도 없이 많다. 행정업무뿐만이 아니라 수업이나 생활지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내가 '교직이 적성에 맞지 않다'라고 얘기하는 건, 정확히 말하면 수업이나 학생 상담 등 교사로서의 본질적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행정 업무가 판치고 권위주의가 만연하는 관료적 학교 시스템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에 적응하는 사람이 되기 싫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본질은 없고 형식만 있는 학교 교육에 질렸다. 그래서 학생들과 보람된 한 때를 보내며 '행복한 학교'에 대한 꿈을 꾸다가도 획일적인 학교 시스템의 현실에 굴복하게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퇴사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이상과 현실 사이, 그 널뛰기의 끝은, 언제나 현실이다. 학교에 처음 들어오던 그 마음 그대로, 학교에 남아 행복한 교실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 나의 '이상'이라면, 어른들의 욕망이 뒤엉켜 수십 년째 바뀌지 않고 있는 비인간적 학교 시스템은 여전한 '현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