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교육 대토론회'라는 것을 시도한 적이 있다. 이것 또한 형식적으로, 연례적으로 치러지는 예산 쓰기 행사에 불과하지만, 전 교직원이 나름대로 학교의 일 년 살이에 대해, 학교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각자의 수업에 바빠 이야기할 기회도 얻기 힘든교사들이 모여 앉아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 기분이었다.
주제별로 모둠을 나눠 토론을 하고, 교장 선생님 앞에서 각종 대안들을 발표했다. 평교사들끼리의 공감대는 형성되었으나 교장선생님이 문제였다. 교장 선생님은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며 나름 교육 전문가로 인정받는 교사들의 여러 대안들을 단박에 묵살시켰다. "너희들끼리 토론은 해도 되지만 결정은 내가 한다." 뭐 이런 식이 되어버렸다. 교사들의 표정은 어두워 갔고, 각자가 처한 '을'로서의 지위를 다시금 확인하게 됐을 뿐이다. 토론회가 끝나고 각자의 교무실에 삼삼오오 모여 불만을 성토했지만, 아무도 책임지고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출근을 하여 또 이전과 같은 일상을 이어갔고, 바로 다음 해에 '교육 대토론회'는 사라졌다.
교사들이 교장에게 받는 대우도 이러한데 , 학생들은 오죽하겠나. 학생 자치회에서 내린 결정과 요구사항들. 교장 선생님과의 간담회에서 꺼내보았자, 최종 판단은 교장이 한다. 교장은 안전 문제, 예산 문제, 행정 문제, 학교 공간 상의 문제 등을 늘어놓으며 최종적으로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철이 없고 생각이 짧아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한다.
시도교육청에서 아무리 매년 '학교 민주주의 지수' 설문조사를 하고, 교사 연수를 시키고, '민주 시민 교과서'를 내려보내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시켜도, 학교는 민주화되지 않는다.
학교 대다수의 구성원이 내린 결정을, 최종 결정권자가 혼자만의 생각으로 커트할 수 있는 학교의 군대식 조직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란 언제나 머나먼 얘기일 뿐이다.
4년간의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며, 현행 제도 안에서 충분히 개선 가능한 학교 시스템을 제안해 본다. 물론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익'이 얽히고설킨 문제라 실현될 수 있다는 기대 하지는 않는다. 그냥 희망사항일 뿐이다.
<학교 단위에서 개선 가능한 제안들>
1. 신규 교사에게는 교직 3년 차가 될 때까지 '담임 업무'를 맡기지 않는다. 신규교사는 학교의 1년 살이 업무를 파악하고, 수업과 평가를 숙달하고, 학생과 관계 맺는 법 등을 서서히 익혀가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교사에게 담임, 특히 고3 담임을 맡기는 것은 학생들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2. 담임교사에게는 적어도 1교시 수업을 맡기지 않는다. 학생들이 아침에 등교해야 하는 시간은 경기도 교육청 기준으로 8시 50분이고, 1교시 수업은 9시 정각에 시작된다. 담임은 9시 50분 학급 조회 시간에 아이들의 핸드폰을 수거하고, 각종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요즘 같은 코로나 방역 시기엔 열 체크도 해야 한다. 어디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어 등교하지 않은 학생에게 연락하고, 학부모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 모든 것을 10분 안에 해결하고 1교시 수업을 들어가는 담임교사는 하루의 시작부터 정신이 없다.
3. 교사의 수업 시간표를 연강(연속된 두 시간 강의)으로 구성하지 않는다. 학교생활기록부에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관찰하여 기록하고 요구하면서, 그것을 기록할 시간을 고정시켜주지 않는다면, 결국에 그냥 내용을 복사 붙여 넣기 하라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직전 시간 수업 내용을 되돌아보고, 내용을 수정하거나 보완하고, 학생들의 활동 결과를 기록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 시간 수업이 끝나면, 다음 시간에는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도록 공강 시간을 확보해줘야 한다.
4. 교사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담임 반에 어떤 긴급한 상황이 생겼을 경우, 교사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강' 제도를 마련한다. 교사가 휴강을 신청하면 수업이 없는 교감이나 교장이 수업을 대신 들어가서 대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자습을 시키는 것이다. 그래야만 교사의 육체적, 심리적 에너지가 소진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교사는 몸이 아파 하루 '병가'를 내고 싶어도, 내가 수업을 안 하면 다른 교사가 내 수업에 대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출근을 해낸다. 교사는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다.
<교육부 및 교육청 차원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
1. 학급당 학생수를 20명 이하로 제한한다. 적어도 담임에게 생활지도, 학습지도, 진로지도, 교우관계 상담, 가정 폭력 감시 기능까지 요구할 것이라면 30명이 넘는 아이들을 담임 혼자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코로나 19 방역 상황에서는 한 교실에 16명이 적정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2018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중학교 기준 OECD학급당 학생수 평균은 22.9명인데 비해, 한국은 28.4명에 달한다. 더군다나 한국의 통계치에는 '특수학급'을 포함시키고 있어 제대로 된 비교를 하기가 어렵다. (특수학급의 학생수는 기본교육법에 의거하여 10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평균을 낮추는데 기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교사가 교육활동 중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바로바로 상의하고 법적, 행정적인 문제를 검토할 수 있는 자문 위원단을 구성하고, 교원의 정신 건강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사실, 교사는 학교에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 위기 상황에 놓인 교원을 외부에서 조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3. 학교 안의 상담교사를 2배 이상 증원하고, 학생에게 심각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담임교사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 차원에서 T/F팀을 구성하여 사안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담임 혼자서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하라고 하니, 연차가 높은 교사들이 담임을 하려고 하겠는가.
4. 교원의 수업 시수를 창의적 체험활동까지 포함하여 주당 15시간 이하로 제한하여, 하루 수업이 3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우리 학교의 2019년 평균 수업 시수는 17.4시간인데 나의 수업시수는 18시간이다. 방과 후 수업을 제외한 정규 일과는 7교시로 구성되는데, 하루에 수업이 4시간 든 날과 3시간 든 날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교사의 행정업무를 줄일 수 없다면,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신규 교원을 증원하여 교사의 수업 시수를 감축하면 된다.
적고 보니 별게 없다. 1화에서부터 이야기했던 것. 결국 근본 문제는 학급당 학생수가 많다는 것, 학생 관리가 담임교사에게만 떠맡겨진다는 것, 그리고 행정업무와 수업 시수가 너무 많아 수업 준비, 생활지도, 상담 등의 모든 중요한 업무가 다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교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받는 '입시 위주 교육'은 사실 학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부모와 학생, 대학 당국,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경쟁'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는 문화가 조성되지 않는 이상 입시 위주 교육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대학서열화 폐지가 우선이 아니라, 경쟁을 조장하지 않는 문화가 우선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한국의 방역시스템이 세계 일등이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져 있다는 것 또한 명백해졌다. 학교 교실에는 학생들이 자료 검색을 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도 구축되어 있지 않고, 교사에겐 온라인 수업을 위한 장비와 프로그램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전면적 원격 수업. 학생과 교사는 온라인 수업 환경에 거의 처음으로 노출되어 1년간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정보와 지식이 빠르게 재편성되며 하루하루 새롭게 배울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E-BOOK, 디지털 교과서, 태블릿 PC, 패들렛 등 각종 효율적인 온라인 학습도구들이 지천에 널려있지만, 우리 학생들은 여전히 앞에는 칠판이요, 뒤에는 사물함이 있는 조그맣고 네모난 교실에서 아직도 일제식 강의를 받고 있다. 다변화하는 미래 사회를 맞아 학생들을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추구는 '창의융합형' 인재로 '정말' 키워내고 싶다면, 창의융합적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유연하고 개별화된, 온오프믹스 교육환경'을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이다. 한 교실에 30명. 근본 문제 해결 없이 미래 교육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