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현실'을 좇다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 일기 9
교사를 관두겠다는 결심을 내리고, 가까운 이들에게 서서히 나의 결심을 알리면서 우려 섞인 조언들을 듣고 있는 요즘이다. 지인들은 하나같이 '현실'이란 이유로 나를 설득했다.
이건 분명히 내 길인데, 그들은 정작 가본 적도 없는 길인데, 무슨 근거로 그렇게 얘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서 하는 말들이니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지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날이면 이상과 현실 사이, 희망과 불안 사이에서 감정과 생각이 널뛰기를 하곤 하는데, 어떤 날 아침엔 마음속의 외침이 귀에 들리는 듯하여 잠을 깬 적도 있다.
"지금 대체 뭐라고 떠들고 다니는 거야. 네가 정말 관둘 수 있다고 생각해? 이제 니 인생은 끝이야 끝. 임고에 합격하기 전 보다도 너는 더 불행할 거야. 네가 발로 뻥 차 버린 그 행운에 배 아파 우는 날이 분명히 올 거라고! 현실적으로 좀 생각해! "
대충 이런 식의 외침이었다. (가끔 우리는 남에게 절대로 하지 못할 비정한 저주를 스스로에게 퍼붓기도 한다.)
현실, 그놈의 현실. 지인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결국엔 '돈'일 것이다. 청년 실업률이 나날이 증가하는 요즘, 자아실현을 위해 그 철밥통이라는 공무원을 관두겠다니. 객관적으로만 보면 매우 비현실적인 생각이기는 하다. 매달 밀리지 않고 나오는 월급에 각종 상여금, 공무원연금, 게다가 일반 직장인은 꿈도 못 꿀 방학... 그 많은 조건들을 포기하는 내가 스스로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군다나 내가 실현하고 싶은 '자아'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 나도 잘 모르겠을 때는, 나 스스로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직장생활을 벗어나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역량이 나에게 있을까.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렵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퇴사'라는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출근만 하면 역시 마음이 무거워지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고,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금 '나만의 현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현실이란 '당장이라도 숨이 꼴깍꼴깍 넘어갈 것 같은 중압감, 마음속에 차오르는 울화, 뻐근해지는 심장' 등이다.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에 발현되는 심리적, 신체적 증상이겠지. 교직 생활 4년 만에, 더 이상은 이런 피로와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다고, 내 몸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살다가는 우울증, 혹은 신경과민에 걸려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상한 사람이 되거나 육신에 병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성의 말이 아닌 몸의 말을 따라가기로 했다. 나의 선택이 비현실적인 '몽상'처럼 보일지라도 어쩔 수 없다. 인생이란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객관적 인생이란 없다.
'지금 이 순간, 지금 흐르고 있는 이 시간이 현실'이라는 것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부와 명예 등의 사회적 성공, 혹은 먹고사니즘을 위해 달려간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자신의 건강은 물론이고 바쁘다는 핑계로 돌보지 못하는 소중한 관계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학부모는 자녀를 위해 바쁘게 돈을 벌지만, 정작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소통에 트러블이 생기고, 관계에 장벽이 생기는 경우를 나는 많이 보았다. 참 슬픈 현실이다.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넉넉한 용돈, 여러 개의 학원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나누는 살가운 사랑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관계를 소홀히 하고 있는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시간을 직장에 팔고, 그렇게 얻은 '돈'으로 불필요한 소비를 해대느라 또 바쁘다. 화려한 옷, 인증샷을 찍기 위한 여행, 브랜드 아파트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얻느라 '건강'이나 '관계'를 잃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나의 소중하고도 유일한 자산인 '시간'을 직장에 빼앗기지 않기로 했다. 먹고사는데 드는 최소한의 비용을 제외하고는 '돈'을 버는데 시간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비싼 옷이나 좋은 물건이 아니다. 읽고 싶은 책을 미루지 않고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시간',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이다.
다행히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 또 나는 원래 가난과 친숙한 사람이므로, 돈 좀 없어도 그런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2화 '계층상승을 위한 가장 공정한 방법' 참고)
타인이 '현실'이라는 막강한 잣대로 나의 인생을 재단하는 데에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지만, 정작 그 삶을 살아내며 '시간'이라는 현실의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늙어서 후회해봤자 이미 써버린 시간은 환불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중요한 것을 위해 시간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항상 제 글을 읽어주시는 구독자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글에 '시간'이란 현실을 내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