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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하 Dec 12. 2020

갈등 많은 세상, 나를 지키는 주문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위로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볼 때만큼, 인생의 큰 쓰라림은 없다. 주식 투자로 돈을 잃거나, 하던 프로젝트가 엎어지거나, 원하던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 때에도 절망감은 찾아오지만, 그것들은 내가 노력하기만 하면 다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갈등 끝에 한 사람이 내게 등을 돌리는 일, 한 사람을 잃는 일은 나 자신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과도 같아 치명적이다. 그 사람과 함께 나눈 시간, 생각, 취향까지도 모두 다 마음에 묻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나 자신에 대해 반문해 볼 수밖에 없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상황을 파국으로 만든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나-.


 상대방 탓을 하며 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면 속은 후련하겠지만, 나 자신이 유치해질 뿐이고

모든 일을 내 탓으로 돌려버리면 억울하기만 하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주문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처음에는 시비곡직(是非曲直,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여 잘못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正理, 올바른 도리)로 돌아감


 사필귀정이란 사자성어는 흔히 역사나 정치의 영역에서 다루어지지만, 사람 간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가 있다.


사람 사이의 갈등에는 보통, 누구 하나의 일방적인 잘못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옳고 그름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서로 싸웠다는 것은 어쨌든 서로에게 모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갈등을 통해 자신의 모남을 인정하고 고치면, 그 갈등 또한 자신의 인격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겠지만, 갈등을 통해 드러난 자신의 모남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합리화, 남의 탓만 하다 보면 자신의 모남에 갑옷을 입혀주는 꼴이 된다. 그 단단해진 갑옷 주변 사람들을 더 괴롭힐 것이며, 결국 자신의 편협함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과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한 사람과 심하게 다투는 상황이 오면 장판 밑바닥까지 들춰서라도 혹시 자신의 잘못이 있는지 살펴보고, 미안한 부분이 있으면 사과를 하고 기다려보자. 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이 기대한 만큼 반응을 해 오지 않고, 오히려 추한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인연을 과감히 놓아버리자. 상대방을 무리하게 탓할 필요도,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 그냥 각자 자기 마음그릇의 넓이만큼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시간에 맡기면, 일은 자연히 '사필귀정'의 힘으로 정리될 것이다.   


 섬세하고도 복잡한, '사람'이라는 하나의 행성과 행성이 만나 잠시 공존했지만, 자신만의 자력(力)에 따라 움직이다 서로의 모난 부분에 '충돌'하고, 잠시 흔들리고, 이내 서로를 스쳐 자신 갈 길을 가게 된 것일 뿐이라고. 사필귀정이라고,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돼있다고, 인연은 그렇게 정리되는 거라고, 그냥 그렇게 위로하고 자기 삶을 살아나가면 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갈등에 흔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김재진 시인님의 시를 소개하고 싶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김재진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中에서





**오랜만에 올리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교 부적응 교사의 퇴사일기' 댓글들에 대한 피드백 글을 쓰려고 구상 중이었는데, 저의 미숙함으로 어떤 소중한 인연과 갈등을 겪게 되면서 마음 정리를 위해서 급작스럽게 쓰게 된 글입니다.

갈등 없이 가는 삶은 없을 텐데, 갈등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나 어렵네요.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갈등 해결 전략이 있으신가요? 상대방과 생각이 다를 때 싸우지 않고 원만하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싸움 이후에 원만하게 화해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갈등 회피 유형의 사람이라 불만을 겉으로 표출하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는 것이 매우 힘든 사람입니다. 댓글로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코로나 조심하는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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