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야기가 내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
전시를 보고 왔다. 폐허가 된 서울, 온 짐을 등에 메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 몸이 흩어져서 마음이 부서진 표정을 한 얼굴이 있었다. 한국 전쟁을 그린 당시의 작품들을 보면서 낯선 기분을 느낀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현대인들이지만 내가 보아왔고 스스로 내비치는 감정들은 그림 속 사람들에 비해서 단조롭다. 그래서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를 찬찬히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이 어색하다. 그들과 함께 잔해 속에 있지 않았는데, 잘 모르는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멈춰있는 상황이다.
회사를 만들었다. 이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신체적인 특징 때문에 육체노동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새로운 일을 본업으로 삼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자연스럽게는 만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고, 함께 일하면서 관계가 생겨났다. 나는 이 일을 왜 하는지 목적을 말할 수 있지만 내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근본적인 계기를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공통적인 경험을 귀 기울여 듣고 있는 나 자신은 늘 어색하고 긴장한다. 그들처럼 사회 생활을 제한하는 신체적 특징이 없는데, 공감하려고 뛰어들었다.
내가 타자로 느껴지는 그 낯선 이야기들 앞에서 마음이 불편하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이 그들과 같아질 수 없는 괴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괴리감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어느 때보다 또렷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전쟁의 아픔을 겪을 수 없지만 나와 연결된 이야기로 기억하고, 장애로 차별받지 않지만 내 일처럼 삼는다.
그 낯선 이야기에 공통분모가 없는 나는 이질적인 존재다. 이건 경계가 오롯한 내 이야기다. 내면에서 낯선 이야기와 부딪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나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설명할 수 있는 말이 ‘그냥’ 뿐일 때도, 언제까지나 내 이야기는 나 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