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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mf Aug 25. 2022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계속 곱씹을 때마다 의미가 달라지는 누군가의 모호한 한마디.

열심히 먹은 것 치고는 다소 허무한 음식.

뭐라고 단언하고 형언할 수 없는 멜랑꼴리 한 느낌. 

이해가 가면서도 안 가고 배부르면서도 배고프고 슬프면서도 마음이 저리지는 않은. 딱 그런. 


딱 이 영화가 그랬다. 

인물들의 표정과 대사, 단어 하나하나 곱씹어보게 되는 영화였고 다소 공허해지는 영화랄까.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 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


출처 : 네이버 영화 정보 


나는 영화를 보며 꽂혔던 인물의 행동과 단어를 여기서 풀어보고 싶다.


*행동

1. 상대방과의 문자

영화 속 해준은 서래와 문자를 주고받는다. 이때, 문자는 마치 생중계처럼 상대방이 문자를 치고 있는 상황, 읽은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해준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문자에 적는 도중 서래의 연이은 말에 자신의 대답을 여러 번 삼키고 바꾼다. 이것이 말로 하는 대화와 글로 하는 대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물론, 말로 하는 대화 역시 상대방의 대답 혹은 태도에 따라 자신의 말을 여러 번 삼키고 바꿀 수 있다. 하지만 텍스트를 지우는 것처럼 철저히 상대방을 속일 수는 없다. 여기서 속인다는 의미는 부정적인 느낌보다는 본인의 마음을 철저히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립적인 의미를 가진다.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텍스트들이 쌓여있을까. 내뱉지 못하고 삼켜버린 글자들이 몇 개 정도 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 핸들 꺾기.

서래와 해준은 영화 중간중간 앞뒤로 나란히 차를 몰며 같은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다. 영화는 그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는데, 핸들을 꺾는 둘의 모습은 제법 비장하면서 단호하다. 우리는 보통 바퀴의 방향을 바꾸고자 핸들을 꺾는다. 같은 방향으로 바퀴를 움직이는 그 둘은 서로 마주 보는 사랑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랑을 한 것일까? 잠깐 멈춰 설 용기, 직접 마주 볼 열정적인 사랑과 욕망을 꼿꼿이 숨기는 동시에 관음적으로 표현해냈던 것일까? 열정적이고 용기 있진 않지만 옆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서서히 같은 체취로 물들기를 바라는 사랑을 원했던 것일까? 


3. 미제 사건 사진 보며 볶음밥 먹기

영화 속에서 해준은 서래에게 중국음식이라며 갖은 야채를 넣고 볶은 볶음밥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서래는 볶음밥을 먹으며 벽에 붙어있는 미제 사건 사진들을 찬찬히 본다. 그 미제사건의 사진들 중에는 다소 끔찍한 장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래는 꼿꼿이 밥을 씹는다. 서래에게는 사진의 충격성보다도 벽에 항상 붙어있는 그 사진에 대한 부러움, 혹은 질투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나중에 서래가 해준한테 자신이 해준의 미제사건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 해준의 한쪽에 영원히 붙어 계속 생각나게 하고, 잠도 못 자게 각인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소 끔찍한 사진들을 보며 볶음밥을 잘도 씹어먹었던 것 같다.


4. 석류와 자라

해준의 아내는 석류를 까고 해준은 자라 도둑들을 검거하고 얻은 자라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해준의 아내는 그의 회사 동료와 떠날 때 석류청과 자라를 가져간다. 옛날부터 자라는 음의 기운, 석류는 양의 기운을 나타낸다고 한다. 아마 자라를 가져간 것은 자신에게 더 이상 줄 양기가 없는 해준의 대체품이 아니었을까.


5. 붕괴

해준은 서래를 위해 사건을 감췄을 때, 자신이 붕괴되었다고 말했다. 경찰로서 지녔던 본인의 자부심이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사랑에 의해 붕괴되었다. 그리고 끝에는 그 붕괴된 자신을 붕괴시키고자 결심한다. 한편, 서래는 해준을 붕괴되기 이전으로 돌려놓고 싶어 하며 스스로 붕괴되었다. 결국 해준과 서래 모두 '무너지고 깨어지며' 서로에게 다가갔고 서로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스스로를 깼다. 그렇게 붕괴된 둘은 마치 눈도 코도 없는 해파리처럼 서로의 숨을 공유하고 물을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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