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굉장히 현장감 있는 글이다.
지금 내 옆에는 오리지널 새우깡과 매운 새우깡이 담긴 그릇, 내 앞에는 어머니가, 옆에는 오빠가 앉아있다.엄마는 앉아서 뜨개질을 하며 드라마를 보고 계시고 오빠랑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얘기 도중 갑자기 오빠가 내가 펴놓은 노트북 키보드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린다.
더럽단다. 좀 닦으랜다.
그러면서 알코올솜을 꺼내더니 느닷없이 후드드득 닦는다. 그리고 기분이 너무 좋단다.
드라마를 보는 것 같던 엄마는 여전히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는 한마디 거드신다.
"나는 생선 비닐을 벗길 때 쾌감을 느끼는데... 그 사각사각 소리도 좋고..."
얘기 중간중간에 본인들의 쾌감 포인트를 느닷없이 발설한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쾌감,, 쾌감은 불쾌감이 없어질 때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그리고 이럴 경우 보통 불쾌감이 제거되면서 쾌감이 극대화된다.
더러운 것(불쾌)을 청소해 깨끗한 상태가 되었을 때,
아픈 것(불쾌)이 나았을 때,
갈등(불쾌)이 해결되었을 때,
거슬리는 것(불쾌)이 없어졌을 때 등등...
물론 모든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종종 불쾌는 쾌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필요충분조건이란
A(불쾌감)가 있을 경우 반드시 이는 B(쾌감)가 되고, A(불쾌감)가 없는 경우에는 B(쾌감)가 될 수 없다.
즉, 불쾌(A)와 쾌(B)는 매우 강력한 상관관계에 있다.
쾌감의 전제가 불쾌인 것이고, 쾌감의 발생 근원이 불쾌인 것인 셈이다.
가끔 통용적으로 반대라 여겨지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둘만큼 닮은 것이 없다. 그리고 그 둘은 순환된다. 반대의 것들은 반대된다고 여겨지는 것에서 파생되고 끊임없이 다시 연결된다.
그렇게 저녁의 새우깡과 맥주는 쾌감과 불쾌 사이로 녹아 흡수되었다. 쩝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