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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mf Feb 03. 2024

영화 ‘괴물’을 보고

갑자기 그런 날이 있다.

혼자 크고 어두운 영화관에 앉아 온전히 영화를 보고 싶은 날. 어제가 그랬다. 사실 친오빠가 이 영화를 추천해 준 건 12월이었지만,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 어제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 졌고 그때 ‘괴물’ 이 바로 생각난 것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스포주의**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서 이상 기운을 감지한다. 용기를 내 찾아간 학교에서 상담을 진행한 날 이후 선생님과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기 시작한다. “한편 사오리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미나토의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신이 아는 아들의 모습과 사람들이 아는 아들의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데…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아무도 몰랐던 진실이 드러난다.


-네이버 영화 소개 참고-


영화는 걸스바가 있는 건물의 화재사건을 중심으로 다시점으로 전개된다. 처음에는 사오리(엄마) 시점, 그리고 이후에는 호리선생님 시점, 그리고 이후 미나토(주인공)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처음 사오리에 시점으로 볼 때는, 호리 선생님이 괴물처럼 느껴진다. 미나토는 선생님에게 “너는 돼지의 뇌를 가졌어”라는 언어폭력을 비롯한 신체폭력을 당한 것처럼 보인다. 집에 신발을 한쪽만 신고 오거나, 선생님이 머리카락을 자르라고 했다며 머리카락을 난데없이 자른다거나, 선생님에게 맞아 코피가 나는 등 다소 이상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사오리는 학교를 찾아가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호리선생님을 만났지만,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매우 형식적인 사과만 받게 된다.


이는 다시 선생님의 시점으로 전개되며 차츰 사건의 다른 이면이 드러난다. 사실 호리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선생님으로서, 그런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리선생님은 미나토가 요리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해할 만한 장면이 몇 개 있었다) 다만, 미나토가 진심을 숨기고자 함으로써 이는 선생님의 잘못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미나토가 감추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건 동급생 요리에게 느끼는 친구이상의 감정이었다. 미나토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감춰야만 하는 것이었다.


미나토의 선생님 호리선생님은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항상 “남자답게”를 습관적으로 말하는 사람이었고,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는 “결혼해서 가족을 만드는 게 행복이야”라고 말했다. 그런 ‘보편적’ 기준에 따르면 동성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던 미나토는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에 미나토는 그 감정을 외면해야겠다고 느낀 것이다.


한편, 요리 역시 미나토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를 일찍이 알아챈 요리의 아빠는 요리에게 “너는 병에 걸린거야” ,”너는 돼지의 뇌를 가져서 그래 “ 등의 말을 하며 마치 요리가 병에 걸린 것처럼 간주하고 요리를 학대했다.


사실 미나토가 호리선생님이 말했다고 한 “돼지의 뇌를 가졌어”는 요리가 자기 아빠에게 듣는 말이라며 미나토에게 말한 것이었고, 미나토는 요리에게 그건 아니라고 말하면서 위로하지만 알게 모르게 미나토 자신에게도 상처가 됐던 것이다. 이에 엄마 사오리에게 “인간에게 돼지의 뇌를 이식한 사람은 인간일까 돼지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아마 미나토에게 돼지는 요리의 아빠였을 것이다.


한편, 아이들의 진심은 관습적이고 무성의한 어른들에 의해 점점 더 묻히고 갇힌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학교관계자들은 교사의 폭력사태로 불거진 이 사건을 황급히 무마하려 호리선생님의 잘못으로 아예 확정하고 학부모님들 앞에서 사과하게 만들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호리선생님은 사회에서 매장당하게 된다.


미나토는 이 사건에 죄책감을 느끼며 학교 창밖 복도에서 혼잣말로 죄송하다고 하는데, 이를 우연히 들은 교장선생님은 무엇이 미안하냐고 묻는다. 미나토는 호리 선생님은 잘못이 없고 자신이 진실을 말할 수 없어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솔직하게 얘기한다.


이때 교장선생님은 손녀딸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뒤 복직한 뒤였는데, 사실 그 손녀딸은 교장선생님의 남편이 차사고로 죽여 그가 감옥에 갔지만, 사실은 교장선생님 본인이 죽였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교장의 명예상 남편에게 뒤집어쓰게 했다는 말인 셈이다. 영화 끝까지 이에 대한 진실은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교장선생님은 미나토에게 악기 호른을 주며 말하지 못하는 걸 같이 불자고 한다. 그렇게 둘은 악기를 최선을 다해 분다. 이 소리는 사회에서 매장당해 학교 옥상에서 위태롭게 서있던 호리선생님 역시 듣는다.


이후 호리선생님은 집으로 돌아와 요리의 일기를 읽던 와중, 요리가 글에 숨겨놓은 ‘호시카와 요리 무기노 미나토’를 보고 미나토가 요리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는 걸, 둘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태풍이 몰아치던 날, 호리선생님은 미나토 엄마 사오리와 아이들을 찾으러 다니게 된다.


그 태풍이 몰아치던 날은 요리와 미나토가 서로 용기를 낸 날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들의 아지트인 오래되어 멈춰버린 기차에서 서로 과자를 나눠먹고 여느 때와 같이 놀다가 비바람을 맞으며 그 깊숙이, 그리고 어두운 기차를 나온다. 그들이 나왔을 때는 햇살이 눈부셨고, 선로는 막힘없이 뚫려있었다. 그들은 선로를 따라 너무나 밝고 해맑게 달리기 시작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영화의 시작이었던 걸스바의 화재는 항상 아빠한테 학대받던, 하지만 이를 무시하며 밝은 척하던 요리가 불을 지른 것이었다. 걸스바에 요리의 아빠가 있었기 때문. 요리는 미나토가 추궁하는 말에 “술을 많이 먹는 건 몸에 안 좋아”라고 답한다. 요리는 겉으로는 밝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곪아있었고 미나토는 이를 알아보고, 더 나아가 좋아하게 되었다. 둘의 상처는 닮아있었다.


교장선생님과 미나토가 같이 호른을 불 때, 교장선생님은 “행복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해”라고 했다. 사실 평범한 이성이 서로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었던 사오리도 싱글맘이 되며 불행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 행복은 ‘특정한 보편적인 사람’ 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괴물은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괴물이 된다.


누군가 나에게 “인간에게 돼지의 뇌를 이식한 사람은 인간일까 돼지일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인간일 수도, 돼지일 수도.”


돼지가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생각 역시 인간의 입장에 불과하고 그 우열을 논하며 요리 아빠는 못됐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속마음의 일부가 돼지에게는 괴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어찌 됐건 미나토와 요리가 행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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