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9m 집라인에서 날려버린 고소공포증

고소공포증을 탄성과 환희로 바꿔준 하동 집라인

순창 채계산의 출렁다리 앞에서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나는 늘 "돈까지 내 가며 사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말로 도망치곤 했다. 그런 내가 하동이 고향인 친구 사라의 계획에 따라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집라인이 예약된 하동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 3개월 여전부터 사라는 단톡방에 하동의 명소를 올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단연 ‘하동 집라인’이었다. 처음엔 못 탄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나 하나 때문에 친구들의 즐거움을 망칠 수는 없었다. 결국 " 다른 사람들이 다 타면 나도 타겠다"는 결연하면서도 난감한 약속과 함께 네 명의 예약이 완료되었다.


운명의 날, 오후에 도착한 매표소 등에는 ‘동양 최장 길이’라는 문구가 위압적으로 적혀 있었다. 안전교육을 받고 체중계 위에 올라가 몸무게에 맞는 장비를 건네받았다. 묵직한 장비의 무게가 마치 내 걱정의 무게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졌다. 함께 온 사라와 탐의 얼굴은 설렘으로 밝았지만, 소피아의 표정은 약간 굳어 있었다.


승합차에 몸을 싣고 해발 849m의 금오산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듯 올라갔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날 법한 가파른 산길을 20여 분간 오르며 내 심박수도 함께 가팔라졌다. 드디어 도착한 탑승대, 발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끝이 보이지 않는 케이블이 아찔한 경사로 뻗어 있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하는 갈등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함께 승합차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 두 명씩 허공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깊은 호흡을 내뱉으며 어깨와 팔을 스트레칭했다. 드디어 내 차례, 출발 플랫폼에 서서 아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상하게도 대기하면서 옆에서 지켜볼 때보다 경사가 완만해 보였고, 막연했던 공포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안전요원의 점검이 끝나고 "출발!" 하는 외침과 함께 발을 뗐다. "아아아아아!" 비명 같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급경사를 지나자 속도가 안정되며 바람의 감촉이 느껴졌다. 무서워서 밑을 보는 대신 시선을 멀리 두었다. 그러자 비로소 보석처럼 박힌 다도해의 절경이 눈에 들어왔다. 옆 라인에서 함께 내려가는 소피아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며 고함을 질렀다. 어느샌가 나는 이 속도와 풍경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종착지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타기 전의 공포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벅찬 환희가 차올랐다. 잔뜩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당당하게 펴졌고, 내 얼굴엔 만족스러운 빛이 감돌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에 전에 없던 힘이 실렸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또다시 두려움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오늘 내 안의 벽 하나를 무너뜨렸고, 앞으로는 어떤 도전 앞에서도 조금 더 과감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으니까. 고맙다, 하동 집라인! 기다려라. 채계산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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