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렴은 'NO'라고 말할 수 있는가?

2024.12.3. 비상계엄 사태를 지나오면서...

by 꿈 꾸는 철이

청렴의 재정의, 금품ㆍ청탁을 넘어 '사유'로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청렴은 비교적 명확했다. 법을 어기지 않고,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으며, 공무원 행동강령을 준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그 밤을 목격하며 나는 청렴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함을 깨달았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은 우리에게 무서운 경고를 보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 된 것은 그가 특별히 사악해서가 아니라, 상급자의 명령을 비판 없이 수용하며 '생각하기'를 멈췄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조직의 위계질서 아래에서 부당한 명령을 "업무의 연장"이라며 기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면, 나는 과연 스스로를 청렴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청렴은 단순히 깨끗한 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정신으로 '옳지 않음'을 식별해 내는 사유의 힘에서 시작된다.



역사와 헌법에서 배운 청렴의 척도, '정언'


역사 속에서 청렴의 표상을 찾는다면 나는 오리 이원익 대감이 떠오른다. 선조의 서슬 퍼런 분노 앞에서도 "이순신을 살려야 나라가 산다"라고 외쳤던 그의 용기는, 단순히 개인적 친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를 향한 충성이 왕(개인)이 아닌 국가 공동체와 정의를 향해야 한다는 '공직자의 청렴한 고집'이었다.


헌법 제7조는 우리 공무원들에게 이원익 대감과 같은 태도를 요구한다.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구절은 우리가 충성해야 할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국회 앞을 메웠던 군경들 중 일부가 보여준 '소극적 명령 수행'과 '위법한 지시에 대한 거부'는 헌법이 부여한 청렴의 의무를 다한 순간이었다. 그들은 조직의 안위보다 헌법적 가치를 상위에 두었다.



나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제 질문의 화살을 나 자신에게 돌려본다. "나는 그 혼란의 현장에서, 혹은 일상 속 부당한 요구 앞에서 단호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대답은 쉽지 않다. "NO"라고 말하는 순간 마주할 조직 내의 고립감,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은 생존의 본능을 자극한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나의 청렴성이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다. 청렴이란 아무런 파도가 없을 때 유지하는 잔잔함이 아니라, 거센 풍랑 속에서도 내가 잡은 키(양심)를 놓지 않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부당한 명령에 눈을 감는 것은 소극적인 동조이며, 이는 청렴의 가장 큰 적인 '관료적 부패'로 이어진다. 나의 청렴성은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통해 매일 점검되어야 한다.


◇ 나는 상급자의 지시가 국민의 권익과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늘 사유하는가?

◇ 나는 조직의 안온함과 개인의 영달을 위해 부당한 현실에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오늘, 어제보다 더 '생각하는 공직자'로서 행동했는가?



청렴은 '용기'라는 근육을 키우는 일


2024년 12월 3일의 계엄 사태는 끝났지만, 그날이 남긴 질문은 매일 아침 내 책상 위로 배달된다. 청렴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다. 이원익 대감의 정언이 그러했듯, 그리고 현장에서 총구를 내렸던 어느 무명 장병의 결단이 그러했듯, 나 또한 '부당함에 대한 정중한 거절'을 연습해야 한다.


나는 이제 청렴을 '용기'와 같은 단어로 이해한다. 평소에 작은 원칙들을 지켜나가며 '양심의 근육'을 키우지 않는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NO"라고 말할 힘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봉사자로서, 그리고 헌법을 수호하는 공직자로서, 나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나의 양심은 살아있는가? 그리하여 나는 지금, 'NO'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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