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집 아주머니와 미화 여사님이 가르쳐준 '선제적 친절과 깊은 배려'
며칠 전 서울에서 저녁을 먹으러 순댓국집에 갔다. 전화 통화 중이라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며 주문을 대신했다. 수저를 놓고 기다리자 깍두기와 양파, 보글보글 끓는 순댓국이 차례로 놓였다. 들깨가루와 양념을 취향껏 넣고 한 술 뜨니 국물이 담백하고 깊었다. 양파 조각 위에 새우젓 찍은 고기를 올려 입에 넣는 맛이 일품이라, 맛에 빠진 채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접시에 양파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이었다. “양파 더 주세요” 부르려던 찰나에 종업원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양파 접시는 금세 다시 채워졌다. 잠시 후 깍두기가 떨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주머니는 내가 요청을 위해 고개를 들기도 전에 이미 새 접시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수많은 식당을 다녀봤지만, 손님의 필요를 이토록 예민하게 살피는 ‘선제적 친절함’은 처음이었다. 계산하며 사장님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비록 사장이 아니지만, 나에게 선제적 친절을 베풀었던 그분의 배려를 칭찬하고 싶어서 한참 이야기 나서야 뿌듯한 마음으로 식당 문을 나섰다.
이런 충만한 배려는 내가 아침마다 운동하는 아파트 체육시설에서도 이어진다. 새벽 7시, 그곳엔 늘 공간을 정갈하게 가꾸시는 미화 여사님이 계신다. 여사님이 출근하지 않는 날은 공기가 유독 차가웠는데, 어느 날 여사님이 먼저 물으셨다. “내가 아침에 난방기를 미리 좀 켜 놓을까요?”
그날 이후, 영하 10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그 공간은 늘 훈훈한 온기와 환한 불빛으로 나를 맞이했다. 한 번은 내가 바람 방향 때문에 특정 위치의 난방기를 선호한다는 걸 알아차리신 여사님이, 다음 날부터는 내가 즐겨 쓰는 쪽의 기기를 미리 켜두기 시작하셨다. 친절을 넘어선, 사람에 대한 깊은 관찰과 사려였다. 그 공간을 채운 것은 기계가 만드는 온도가 아니라, 타인의 아침을 걱정하는 한 사람의 지극한 정성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순댓국집의 아주머니, 새벽을 여는 미화 여사님까지. 일상의 도처에서 이토록 마음이 충만한 분들을 수시로 만나니 말이다. 그분들의 선제적 친절과 사려 깊은 배려는 세상을 더 향기롭게 만드는 향나무다.
누군가 나를 부르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마음, 그 마음들이 모여 우리네 삶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그분들에게 받은 온기를 누군가에게 기꺼이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닿았던 그 충만한 다정함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고스란히 흘러갈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