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감당하기 버거운 많은 빚을 졌다.
테니스공을 치려던 순간, 뒤에서 누군가 굵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내리치는 듯한 ‘딱’ 소리가 났다. 그 충격에 무릎이 꺾이며 주저앉았다. "아, 근육 파열이구나." 10여 년 전의 불길한 기억이 되살아나며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행히 그때보다는 고통의 무게가 조금 가벼웠다.
그 '딱' 소리 이후,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멈췄다. 일어서는 것부터 이동하는 것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동료의 어깨를 빌려 겨우 주차장으로 향했고, 병원 문턱을 넘을 때도 그의 팔에 의지해야 했다. 진료 결과는 다행히 3주 회복. 다음 달 후반에 예정된 중요한 행사들에 영향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그제야 팽팽했던 긴장이 조금 헐거워졌다. 반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병원문을 나올 때에는 들어갈 때보다 몸도 마음도 훨씬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오니 현실은 다시 녹록지 않았다. 50미터 남짓한 복도가 끝도 없이 멀어 보였다. 땀과 모래알이 섞여 서벅거리는 몸을 씻고 싶었지만, 서서 옷을 벗는 것조차 사치였다. 결국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채 옷을 벗고, 샤워실로 기어갔다. 앉은 자세로 간신히 씻고 나오며 생각했다. 물을 마시는 일, 방안의 불을 켜고 끄는 일 같은 사소한 일상마저 목발이라는 도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음 날 아침, 식당에 들어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양손으로 목발을 잡아야 하니 식판을 들 손이 없었다. 함께 운동했던 김 과장이 말없이 밥과 반찬을 담아다 주었고, 식사가 끝난 뒤 식판을 치워주었다. 내 불편함은 참을 수 있었지만, 타인에게 폐를 끼친다는 미안함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배려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출근길 백팩을 들어주러 방 앞까지 온 국장님, 화장실 가기 편한 자리라며 선뜻 자신의 노트북을 옮겨 자리를 바꿔준 남 과장, 샤워실에 의자를 놓아주고 주말 식재료를 대신 사다 준 동료들까지. 과일과 커피, 간식을 건네는 여러 손길이 다친 종아리 대신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웠다.
근육이 찢어진 자리에 동료들의 따뜻함이 겹겹이 쌓였다. 문득 내가 예전에 건넸던 사소한 도움들도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묵직한 위로였을까 반추해 본다. 평생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며칠간 받은 사랑은 그 빚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만들었다.
이제 나는 이 기분 좋은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려 한다. 이 빚이 내 마음을 짓누르는 짐이 되지 않도록, 다른 이들에게 부지런히 나누고 갚아나갈 것이다.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고 싶다. 다정한 말 한마디, 작은 배려 하나로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 나는 지금 그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기분 좋은 연습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