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의 하늘, 이름 없는 거인의 일갈

by 꿈 꾸는 철이

3. 연경의 하늘, 이름 없는 거인의 일갈


1573년, 명나라 사신단의 일원이 된 원익은 연경으로 향했다. 직급이 낮고 키가 한 뼘이나 작은 그를, 거만한 역관들은 투명인간 취급했다.


"저 정자(正字) 나리는 말 타는 법도 모르면서 어찌 여기까지 왔을까?"


역관들은 중국어로 원익을 깔보는 농담을 했다. 원익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명나라 관료들 앞에서는 자신들이 조선을 대표하는 양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명나라 예부(禮部)의 회담장에 들어선 순간, 모든 것이 뒤집혔다. 명나라 고관들이 까다로운 외교 문구를 들이대며 압박해 오자, 조선의 역관들은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말석에 앉아 있던 원익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서 대감, 그 문구는 대명회전(大明會典)의 조항과 어긋나지 않습니까?"


장내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원익의 중국어는 유창한 것을 넘어 명나라 귀족들이 쓰는 우아한 고사(故事)로 가득했다. 역관들은 벙어리가 된 채 입을 벌렸고, 명나라 예부상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익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조선에 이토록 해박하고 격조 높은 선비가 있었다니! 진정 그대가 저 역관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말한 것이오?"


"글에는 국경이 있으나, 진심에는 통역이 필요 없는 법입니다."


원익의 당당한 태도에 명나라 대신들은 감탄하며 조선의 요구를 전격 수용했다. 돌아오는 길, 은사금을 챙겨주려는 사신단장에게 원익은 조용히 말했다.


"이 돈은 제가 아니라 함께 고생한 역관들과 병사들의 몫으로 돌려주십시오. 저는 단지 오동나무처럼 제 속을 비워 소리를 냈을 뿐입니다."


동료들은 그를 보며 수군거렸다. "저 사람은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진 인간인가." 원익은 그 소리를 뒤로하고 조용히 말고삐를 쥐었다. 그는 이미 다음 역행(逆行)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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