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랑말과 흙먼지 길

by 꿈 꾸는 철이

제2장: 안주의 뽕나무와 쌀 만 석

1. 조랑말과 흙먼지 길


선조 20년(1587년). 안주(安州)로 향하는 길목은 죽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북방의 찬 바람은 일찍부터 불어와 길가의 잡풀들을 시커멓게 말려 죽였고, 간간이 보이는 민가들은 뼈대만 남은 채 앙상했다. 그 황량한 길 위로 작은 조랑말 한 마리가 타박타박, 무거운 정적을 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대감, 조금만 더 가면 관아입니다요. 그런데 저기 저 사람들 좀 보십시오. 산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요."


뒤를 따르던 하인 돌쇠가 손가락으로 길가에 웅크린 무리를 가리켰다. 사람들은 새로 부임하는 목사의 행차를 보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초점이 풀린 채 땅바닥의 벌레나 마른 풀뿌리를 훑고 있었다.


원익은 말에서 내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낡은 무명옷 자락이 흙바닥에 끌렸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노파의 앙상한 손을 잡았다.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흙이 박혀 있었다.


"할머니, 기운을 내십시오. 내일부터 관아에서 죽을 끓일 것입니다."


노파가 힘겹게 고개를 들더니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죽...? 지난번 사또도, 그 전번 사또도 그 소린 합디다. 그 양반들 가고 나면 우리 집엔 숟가락 하나 안 남았소. 나으리도 그냥 지나가시구려. 귀찮소."


노파는 원익의 손을 힘없이 뿌리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원익은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가난이라는 지독한 중력이 이 백성들의 영혼까지 땅바닥으로 처박고 있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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