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의 기적

만 석의 약속과 푸른 뽕나무 바다

by 꿈 꾸는 철이

4. 안주의 기적 — 만 석의 약속과 푸른 뽕나무 바다


평양 감영에서 "목숨을 걸겠다"라고 장담한 지 어느덧 1년. 약속한 기일이 다가오자 평양 감영의 아전들은 술렁거렸다. "안주 같은 똥땅에서 무슨 수로 만 석을 갚겠느냐"며 비웃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약속한 그날, 평양 감영의 성문 너머로 수백 대의 수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타났다.


이원익은 뽕나무가 자라 비단을 짜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에 넣고 있었다. 그는 뽕나무를 심는 동시에, 안주 백성들과 함께 버려진 땅을 개간하여 생명력이 강한 잡곡을 심게 했고, 관아의 불필요한 비용을 깎아 한 톨의 곡식이라도 더 모았다. 무엇보다 "사또가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소식을 들은 안주 백성들이 제 자식의 입에 들어갈 곡식을 아껴가며 감영의 빚을 갚는 데 보탰다.


정확히 1년 만에 평양 감영 마당에 쌓인 만 석의 곡식 앞에서, 권 감사는 혀를 내둘렀다.


"이 목사, 정말로 이 만 석을 채워올 줄이야. 자네의 고집이 평안도를 살렸구먼."


원익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대감, 제가 가져온 것은 곡식이 아니라 안주 백성들이 되찾은 '삶의 의지'입니다. 약조를 지킬 수 있게 믿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그로부터 2년이 더 흘러 이원익의 임기 3년이 찼을 때, 안주는 완전히 다른 땅이 되어 있었다. 들과 산은 푸른 뽕잎의 바다가 되었고, 마을마다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서걱서걱' 소리가 가을비 소리처럼 기분 좋게 들려왔다.


"대감! 이것 좀 보십시오! 우리 안주 비단이 평양 저잣거리에서 최고가로 팔렸습니다요!"


돌쇠가 은전이 든 주머니를 흔들며 달려왔다. 1년 만에 빌린 곡식을 갚고, 남은 2년 동안은 안주 자체의 부(富)를 축적한 것이다.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떠나는 날, 안주 고을의 길목은 배웅 나온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3년 전, 부임하던 날 원익의 손을 뿌리쳤던 그 노파가 잘 구워진 떡 한 접시를 내밀었다.


"사또... 내 그때 눈이 멀어 사또를 몰라봤소. 이 안주 땅에 뽕나무 향기를 맡게 해줘서 참말로 고맙소.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으리다."


원익은 노파의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 이제 이 뽕나무들이 할머니의 든든한 지붕이 되어줄 것입니다. 부디 평안하십시오."


백성들은 떠나는 사또의 뒷모습을 보며 통곡했다. 그들은 원익이 일구어낸 기적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 안주 백성들은 고을 입구에 그의 공덕을 기리는'백성들의 사당'을 세웠고, 평양 감영 또한 약조를 지키고 대동강의 안녕까지 살펴준 그를 기려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올렸다.


조랑말을 타고 다시 길을 나서는 원익의 뒤로, 푸른 뽕나무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것은 관행이라는 무거운 중력을 이겨내고 '고객 만족'의 적극행정을 실천한 자만이 들을 수 있는 대지의 찬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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