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평양성 탈환의 숨겨진 영웅
1. 삭풍의 평양성, 망명의 길을 막아서다
1592년 6월, 평양성 안의 공기는 습한 기운과 패배의 공포로 질척였다. 부산에서 한양으로, 다시 평양까지 쫓겨온 선조의 어가는 위태롭게 흔들렸다. 왜군의 조총 소리가 한강 너머까지 들려오자, 어전 회의는 다시금 비겁한 술렁임으로 가득 찼다.
"전하, 평양도 위험하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몸을 피하심이 가한 줄 아옵니다."
망명(亡命). 그 단어가 나오자마자 선조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멈췄다. 나라를 버리고 남의 나라 땅에서 목숨을 구걸하겠다는 왕의 비겁함이 대신들의 입을 통해 합리화되던 순간이었다. 모두가 왕의 안위만을 살펴 고개를 숙일 때, 평안도 관찰사 이원익이 홀로 앞으로 나섰다.
"아니 되옵니다! 전하, 결단코 아니 되옵니다!"
원익의 일갈은 평양성의 낡은 기와를 흔들었다. 그는 선조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전하께서 조선의 땅을 단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이 나라의 백성은 고아(孤兒)가 되고 사직은 시체가 될 것입니다! 임금이 제 나라를 버리고 남의 나라 문간방을 빌려 목숨을 부지한다면, 어느 백성이 제 목숨을 바쳐 왜적과 싸우겠습니까?"
"이 관찰! 짐의 안위가 곧 국방이거늘, 어찌 그리 무엄한가!"
선조의 호통에도 원익은 바닥에 머리를 짓찧으며 외쳤다.
"정 가시려거든 이 원익의 목을 먼저 베어 평양성문에 걸고 가소서. 제 눈으로는 전하께서 나라를 버리시는 상황을 결코 볼 수 없나이다!"
그 서슬 퍼런 강직함과 목숨을 건 간언 앞에 망명론은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원익의 기개에 압도된 선조는 비로소 자신의 비겁함을 부끄러워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 준엄한 꾸짖음이 있은 후, 선조는 다시는 압록강을 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원익은 왕의 발목을 잡은 것이 아니라, 무너져가던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을 압록강 이남에 단단히 붙잡아 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