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중력에 짓눌린 막사

by 꿈 꾸는 철이

2. 패배의 중력에 짓눌린 막사


1592년(선조 25년) 6월. 임진강 방어선마저 왜적의 조총 소리에 허망하게 무너졌다는 비보가 평양성에 닿았다. 도원수 김명원은 패잔병들을 이끌고 북으로 후퇴 하며 평양성 인근에 간신히 진을 쳤다. 그가 머무는 임시 막사 안은 죽음보다 더 무거운 침묵과 패배의 비릿한 냄새가 감돌았다.


"도원수, 평안도 관찰사 이원익 대감께서 도착하셨나이다."


병사의 보고에 김명원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갑옷은 진흙과 핏자국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눈은 초점이 풀린 채 푹 꺼져 있었다. 그는 막사 밖으로 나가 흙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마침 말에서 내리던 이원익과 눈이 마주쳤다.


"대감, 저를 죽여주십시오. 한강을 내어주고 임진강마저 왜놈들에게 헌납했으니, 제가 무슨 낯으로 전하를 뵙겠습니까. 어서 이 김명원의 목을 쳐서 군기를 바로 세우소서."


김명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주변의 패잔병들은 고개를 숙인 채 신음했고, 이원익을 수행해 온 문관들은 혀를 차며 김명원을 비난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허어, 일국의 도원수라는 자가 적을 보기도 전에 겁부터 먹고 도망을 치다니. 군법이 엄중함을 보여야 마땅하오!"


한 수행 관원의 일갈에 김명원의 고개가 더 낮게 떨구어졌다. 그때였다. 이원익이 천천히 걸어가 김명원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갑자기 무릎을 굽혀 김명원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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