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명령을 내리소서, 도원수"
"이게 무슨... 대감! 어찌 이러십니까! 일도의 관찰사 대감께서 죄인에게 고개를 숙이시다니요!"
당황한 김명원이 이원익을 일으키려 했으나, 이원익은 허리를 펴지 않았다.
"도원수, 평안도 관찰사 이원익이 군례(軍禮)를 올립니다. 전장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조선의 칼을 지켜오신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나이다."
"대감, 비록 제 직위가 도원수라 하나 일도의 실권을 쥔 관찰사께서 이토록 낮추시니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미 패장입니다! 저에게 예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이원익이 천천히 허리를 펴고 김명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장내 전체를 울릴 만큼 단단했다.
"도원수, 스스로를 패장이라 부르지 마시오. 장수가 스스로를 죄인이라 칭하는 순간, 저 뒤에 서 있는 수천 명의 병사들은 오합지졸이 되는 것이오. 당신은 전하께서 임명하신 조선의 대장군이오. 장군이 무릎을 꿇으면 조선의 자존심이 무릎을 꿇는 것이란 말이오!"
이원익은 주변을 둘러보며 병사들이 들으라는 듯 크게 외쳤다.
"나는 오늘부터 평안도 관찰사로서 이 지역의 모든 군사와 물자를 도원수의 명에 따라 움직이겠소. 군사 작전의 모든 결정권은 도원수에게 있으며, 나는 그 결정을 행정으로 뒷받침하는 부관이 될 것이오."
그날 저녁, 작전 회의가 열렸다. 이원익은 굳이 김명원을 상석에 앉히고 자신은 그 아래 흙바닥에 앉았다. 김명원이 머뭇거리며 지도를 가리키자, 이원익이 먼저 군례를 올렸다.
"도원수, 평양성 탈환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평안도의 창고를 어떻게 열면 되겠습니까?"
"대감... 일도의 관찰사이신 분이 어찌 제게..."
"여기는 조정이 아니라 전쟁터요. 전쟁터의 주인은 무관이지 문관이 아니오. 자, 명령을 내리소서! 도원수의 명이 떨어져야 병사들이 창을 쥐지 않겠습니까!"
김명원의 눈에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평양성의 지점을 짚었다. 이원익은 밤새도록 김명원의 곁을 지키며 그가 내리는 지시를 꼼꼼히 기록하고, 직접 병사들의 군량을 챙겼다. 패배의 중력에 처박혔던 조선 군대가 비로소 '상관 존중'이라는 위를 향한 힘을 얻어 일어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