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꺾인 창검을 세운 솔선수범의 힘
이원익이 김명원에게 올린 절은 단순히 한 개인에게 올린 예가 아니었다. 그것은 패배라는 독기에 중독되어 사분오열된 조선 군대의 심장에 꽂는 거대한 침(針)이자, 관료의 오만을 깨부수는 솔선수범의 첫걸음이었다.
막사 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병졸들의 술렁임은 안주 벌판의 억새 소리보다 거칠었다. 한강에서 밀리고 임진강에서 쫓겨온 병사들은 도원수 김명원을 '임금을 버린 자' 혹은 '살아 돌아온 부끄러움'으로 여기며 등 뒤에서 가래침을 뱉던 참이었다. 대장군의 영이 서지 않는 군대는 이미 군대가 아니라 도살장을 앞둔 짐승 떼에 불과했다.
"보게나, 관찰사 대감이 도원수에게 머리를 조아리셨네."
진흙탕에 주저앉아 녹슨 창날을 갈던 노병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원익은 작달막한 체구였으나, 그가 스스로 굽힌 허리는 그 어떤 성벽보다 단단하고 장엄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평안도 전체를 호령하는 관찰사 어른이 저 패장 앞에 무릎을 맞대는데, 우리 같은 일개 병졸이 어찌 장군의 명을 거역하겠는가. 나으리가 먼저 장군을 믿으시는데, 우리도 믿고 따라야지."
이원익의 솔선수범은 병사들의 가슴속에 고여 있던 패배의 앙금을 씻어냈다. 그는 말로만 지휘권을 넘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직접 진영을 돌며 병사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손은 안주에서 뽕나무를 심을 때처럼 투박하고 따뜻했다. 병사들이 먹는 쉰 보리밥을 똑같이 나누어 먹고, 장수들이 앉는 상석 대신 병졸들이 앉는 가마니 위에 털썩 앉아 지도를 펼쳤다.
"동요하지 마라. 도원수께서는 너희를 버린 것이 아니라, 이 평양성에서 적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잠시 칼을 갈고 계셨던 것이다. 내가 먼저 도원수의 부관이 되어 너희의 식량과 화살을 챙길 것이니, 너희는 오직 장군의 깃발만 보고 나아가라!"
관찰사가 스스로를 낮추어 '부관'이라 칭하며 앞장서자, 불길처럼 번진 것은 경외심이었다. 권위라는 무거운 껍질을 스스로 깨뜨리고 현장으로 뛰어든 원익의 모습에 감화된 병졸들은 비로소 흩어졌던 창검을 추슬렀다. 김명원의 영(令)은 다시금 서슬 퍼런 날을 세웠고, 패잔병의 눈동자에는 독기 서린 생기가 돌았다.
1593년 정월, 드디어 평양성 탈환의 서막이 올랐다. 이원익은 약속대로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명나라 군대와의 보급로를 닦고, 조선 병사들의 배를 채웠다. 전투가 시작되자 김명원은 이원익이 솔선하여 세워준 자존심을 방패 삼아 성벽을 향해 호령했다.
"나를 죄인이라 불러도 좋다! 그러나 오늘 이 성을 되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죽어서도 조선의 흙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아가라!"
명군의 불화살이 평양의 하늘을 가르고, 조선군이 성벽 위로 개미 떼처럼 달라붙었다. 이원익은 전선의 후방에서 직접 화살 통을 나르고 부상병의 상처를 직접 씻기며 병사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하나가 된 그들은, 일개 문관이 패장에게 숙였던 그 '고개'가 사실은 승리를 향해 가장 먼저 내디딘 솔선수범의 위대한 발걸음이었음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마침내 왜적들이 성문을 열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평양성 탈환. 그것은 조선의 국운을 되살린 기적이었으며, 그 기적의 밑바닥에는 패배의 중력에 처박혔던 장수를 향해 먼저 고개를 숙이고 현장을 누볐던 이원익의 실천적 리더십이 뽕나무 뿌리처럼 깊게 박혀 있었다.
성이 함락되던 날의 곡성은 사라지고, 대동강 물줄기 위로 승전의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원익은 피 묻은 갑옷을 입은 김명원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패장이 아니라, 성을 되찾은 영웅을 향한 당당한 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