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12시간의 국청, 이순신을 구하다
1. 남해의 파도, 두 거인의 약속
을미(乙未, 1595년)년 가을, 남해의 물결은 유독 푸르다 못해 시커멓게 일렁이고 있었다. 도체찰사(都體察使) 이원익은 판옥선과 거북선이 삼엄하게 도열한 한산도 군영에 발을 내디뎠다. 그를 맞이한 것은 검게 그을린 얼굴에 형안(炯眼)을 지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었다.
"통제사, 여기까지 오는 길에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었소. 그들이 장군을 신(神)처럼 의지하고 있더군."
이원익이 넌지시 건네자, 이순신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나으리, 백성들이 의지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살 수 있다'는 희망일 뿐입니다. 저는 그저 그 희망이 깨지지 않게 몸으로 막고 서 있는 방패막이에 불과합니다."
두 사람은 군영을 천천히 돌았다. 이원익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란 중임에도 병사들의 군복은 정갈했고, 무기들은 날이 서 있었다. 무엇보다 병사들의 눈빛에는 공포 대신 '믿음'이라는 단단한 뼈대가 서 있었다. 이원익은 이순신의 거친 손을 보았다. 수많은 해전을 치르며 굳은살이 박이고 흉터가 남은 그 손은, 안주에서 뽕나무를 심던 백성들의 손과 꼭 닮아 있었다.
"장군, 조정에서는 여전히 수군 철폐론이 나오고 있소. 나라가 장군을 시기하고 버릴까 두렵지 않으십니까?"
이순신의 시선이 먼 바다 끝, 왜적의 소굴이 있을 법한 수평선에 머물렀다.
"나라가 저를 버려도, 저는 이 바다를 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제가 입은 관복의 무게이자, 제가 짊어진 중력(重力)입니다."
이원익은 전율했다. 저 작은 어깨에 조선의 명운을 얹고 서 있는 사내. 그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역행자'임을 직감하며, 속으로 나직이 맹세했다. '장군이 바다를 지킨다면, 나는 조정에서 장군을 지키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