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판서 대감의 곳간이 아니라 백성의 밥사발이 근간이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영의정 이원익은 품속에 숨겨두었던 비수 같은 개혁안을 꺼내 들었다. 대동법(大同法). 그것은 수천 년 이어온 기득권의 거대한 성벽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선언이었다.
"전하! 집집마다 바치는 특산물을 폐하고, 토지 면적에 따라 오직 쌀로만 세금을 거두어야 하옵니다. 땅 없는 백성은 면해주고, 땅 가진 지주들이 더 내게 하는 것이 하늘의 이치입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정은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혔다. 권력의 비단옷을 입은 지주들과 대신들이 낯을 붉히며 고함을 질렀다.
"영의정! 지금 지주들의 고혈을 짜내겠다는 것입니까? 땅 많은 자가 세금을 더 내는 법이 천지에 어디 있단 말이오!"
원익은 그를 향해 차갑게 웃으며 일갈했다.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죽창이 되어 대신들의 허위(虛僞)를 찔렀다.
"판서 대감! 땅이 많은 자가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이치지, 땅도 없는 백성이 남의 특산물까지 빚내서 바치는 게 이치란 말이오? 그것은 법이 아니라 대낮에 저지르는 강도짓이오! 나라의 근간은 대감의 가득 찬 곳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텅 빈 밥사발에 있소! 백성이 죽어 나가는데 당신들의 비단옷 주름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원익의 서슬 퍼런 기개에 대신들은 압도당했다. 그는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를 비워, 오동나무 거문고처럼 오직 백성의 신음만을 소리로 내어 광해왕의 마음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