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조선을 부활시킨 거목
1. 잿더미가 된 강토, 죽음의 중력에 갇히다
1598년, 7년의 지옥 같던 포연이 비로소 걷혔다. 그러나 남겨진 조선은 나라도, 땅도 아니었다. 수백만 명의 백성이 왜적의 칼날과 굶주림에 쓰러져 흙이 되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제 살점을 뜯어 먹으며 연명하는 유령의 형색이었다. 전 국토의 3분의 2가 불타버려 세금을 거둘 땅조차 마땅치 않았으니, 조선이라는 종묘사직은 이미 무덤 속으로 반쯤 발을 들인 형국이었다.
이원익은 그 처참한 폐허 위에 홀로 선 거목이었다. 그는 비린내 나는 관복 대신 낡은 무명옷을 입고 민초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으리, 보시오. 우리 마을에 나지도 않는 전복이며 산삼을 바치라니, 이게 나라에서 내린 명입니까, 아니면 저승사자의 소환장입니까?"
경기도 어느 산골, 흙을 파먹다 입가가 시커매진 노인이 원익의 가마니 소매를 붙잡고 오열했다.
공납(貢納)이라는 올가미는 왜적보다 잔인하게 살아남은 자들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원익은 노인의 거친 손을 맞잡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안광에는 슬픔보다 깊은, 시대의 결단이 서렸다.
'나라가 백성을 지키지 못했는데, 백성더러 나라를 먹여 살리라 하는구나. 이 모순을 깨지 못하면 조선은 여기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