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면 좋겠어요
옆에 있는 사람이 잘 되어야 내가 잘 된다.
팀장 회의를 끝냈다. 재산관리를 담당하는 J팀장이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내 자리 옆의 소파에 앉으라고 했다. 그는 업무 이야기를 했다. 여러 건의 업무 협의를 마치고 그는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내 자리로 돌아와 일을 하려고 자리를 잡는데 예산을 담당하고 있는 P팀장이 왔다. "과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 자리 바로 옆의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P팀장은 조용한 데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말을 꺼냈다. 다가오는 정기 인사에 전보희망서를 내지는 않았지만, 다른 기관으로 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 다른 팀장이 와서 새롭게 팀을 이끌고 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새해에 팀 간 업무도 조정되고 구성원도 달라지는데 자신이 감당할 자신이 없고, 총무팀장이 팀 간 업무 조정할 때 예산팀 직원 한 명을 총무팀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며, 그 당시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총무팀장의 그 말은 총무팀장의 생각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려면 팀장들 간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며, 혹시 사람을 데려간다 하더라도 데려가면 일도 함께 가져야 한다. 그래서 예산팀의 사람을 데려간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고, 팀간 업무를 조정하려는 의미였을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P팀장은 평소에 조용하면서 말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근처에 가서 보거나 아는 체를 해야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다. 반면에 자신에게 기분 좋은 사건이나 상황이 생기면 쾌재를 부르며 그 감정을 맘껏 표현하기도 하는 40대 후반의 여성이다. 직장 내에서 팀장이기는 하지만 한 단계 승진을 해야 보다 안정적인 위치에서 남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3~5년 기간 정도 자신이 어떠한 보직을 갖고, 어떠한 실적을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승진의 기회가 올 수 있는 시기이다.
나는 P팀장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팀장님만 생각하고, 팀장님 하고싶은대로 하세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도와 줄게요."
P팀장은 여러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서열, 승진 관련 생각, 기관 내에서 자신의 위치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인생의 선배이고, 직장에서도 선배인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해도 되냐고 사전에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나는 P팀장님이 잘 됐으면 좋겠다. 박팀장이 잘 되는 게 곧 내가 잘 되는 것이니까.... " 그런 연장선상에서 승진을 포기하거나 완전히 신경 쓰지 않으면서 남은 직장생활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다른 기관으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지금 여기서 근무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새해에 팀의 역할과 구성원이 조금 달라지고 부서내 환경이 변화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만, 지금 하는 것 같이 하면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문제해결 등 성장할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는 말을 덧 붙였다. 내년에도 여기서 근무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P팀장이 말했다. "감사해요. 제 입장에서 들어주시고 이야기해 주셔서 고마워요. 지금까지 여러 과장님들과 근무했지만, 저의 심경과 생각을 이렇게 편안하게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에요." 나도 박팀장이 고마웠다. 자신의 고민거리를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직장에서 상급자에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기도 쉽지 않다. 대화 상대로 생각해 줘서 고맙다. 서로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가능하다.
P팀장은 더 생각해 보고 최종적으로 결정되면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어떤 결정이든지 P팀장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합니다. 팀장님이 잘 되면 좋겠어요." P팀장은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한 시간이 넘는 대화를 마쳤다.
(2023.11.14.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