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로맨스 전문 작가?!
로맨스 드라마, 예능은 조금도 안 보는데...
내가 처음 이야기를 쓴 건 17살 때였다. 가상의 동양풍 나라를 세워서 쓰기 시작했는데, 옛날 느낌을 쓰다 보니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현대의 찬란한 문물을 가져와서 뒤섞어 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판타지가 섞여버렸다.
그 후로, 로맨스+판타지로 소설을 썼다. 사실 로맨스만 쓰기는 벅차서, 판타지를 섞은 것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감정과 사건을 함께 배치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연스럽게, 좀 더 긴 호흡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로맨스에 그다지 애착도 없고, 취약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특히 현대로맨스를 처음 썼을 때는 감정적인 번아웃이 너무 세게 왔던 지라 나는 로맨스를 쓰면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로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로맨스가 판타지의 사건 흐름에 윤활유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로맨스는 내가 여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탑재된 게 아닐까 싶다.
로판은 여성향 소설이고, 로판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많은 여자들이 꿈꾸는 능력자에 다정남인 경우가 많으니까. 그걸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근데 방작원에서 합평을 하는데, 유독 내가 로맨스에 강하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히 나는 사회 문제에 대해 다룬 이야기에도 코멘트를 했고, 살인사건을 다룬 이야기에도 코멘트를 했다. 근데 어느 순간에 보니 '로맨스 전문 담당'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로맨스라는 장르는 아무래도 가볍게 느껴지니 말이다. 나는 좀 무게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로맨스를 벗어나 일상문제나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근데, 인정하기로 했다.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거랑 잘하는 건 달랐던 내가 아닌가. 이야기를 쓰는 장르도 그와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앞으로는 로맨스에 더 초점을 맞춰서 더 많은 이야기를 구상하고 쓰려고 한다.
내가 잘하는 걸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하니,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그렇게 잘하는 걸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잘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