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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수록 어려워지는 글쓰기

쓰고 싶은 글 vs 써야 하는 글

by 혜지

처음 활동을 시작한 2013년에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가 수가 적었다.

인터넷소설을 쓰던 기존의 작가들, 아니면 네이버 챌린지리그에 한 번 글을 써서 1등 한 작가들이 베스트리그에 올라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때 나는 쓸 때마다 챌린지리그 1등을 했고, 베스트리그 올라가서도 내 글은 모두 1등을 했다. 그때는 그게 내 실력인 줄 알았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진짜로 운이 좋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같은 소재로 지금 웹소설을 써서 올려보라고 하면 '글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너무나도 파격적인 소재가 많이 올라온다. 여성향의 경우 로맨스는 19금이 장악한 지 오래고, 돈을 벌려면 BL만큼 좋은 장르가 없다.

10년 동안 쓰고 싶은 웹소설은 실컷 썼다. 2023년, 웹소설을 쓴 지 딱 10년이 되던 해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쓰고 싶은 웹소설은 다 썼다고.

신기하게도 때맞춰서 출판사에서도 19금 아니면 BL을 요청했다. 출판사는 사업을 하는 곳이다. 돈이 1순위인 곳이니 돈 되는 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요구가 서운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나였다. 그런 글은 죽어라 짜내려고 해도 나오지 않았다. 한글 창을 켜놓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 글자라도 쓰는 순간 손이 먼저 멈췄다. 본능적인 거부반응이 글을 못 쓰게 했다.

사실 계속 돈을 벌려면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써야 하는 글을 쓰는 게 맞다. 근데 써야 하는 글은 죽어라 안 써지고, 머릿속에는 또다시 새로운 소재만 떠오른다. 그래서 내가 다른 작가들에 비해 수입이 낮은 걸 지도.

작가를 하고 싶다면, 글로 먹고살고 싶다면, 글 기둥을 부여잡고 살아가려면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써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놓을 수도 없다.

글 쓰기 10년 차쯤 된 작가들을 보면 두 개의 작업을 같이 하는 경우를 종종 보기도 한다. 하나는 돈이 되는 글, 하나는 쓰고 싶은 글. 스토리 혼돈이 오지 않냐고 물어보면 종종 캐릭터 이름을 바꿔 쓸 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글을 계속 써나가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하는 모습에 좀 반성하기도 했다.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고상한 일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출판사가 요구하는 웹소설을 낑낑거리며 조금씩 쓰기 시작했는데..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 참 쓰기 어렵다. 하하.

글이라는 거, 쓰면 쓸수록 더 어려워진다. 점점 나를 시험하는 허들이 높아지는 기분이다. 이쯤 되면 눈감고 술술 쓸 줄 알았는데 더 힘들고 더 어렵다.


인생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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