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덩굴 같은 관계 맺는 법
잎은 나의 기억과 닮아 있다. 볕 들고 바람 부는 곳에서는 잘 마르는 잎도, 어둡고 습한 흙 위에서는 쉬이 썩어버리니 말이다. 덮어 둔 채 외면하고 싶던 수많은 기억이 있었고, 잊기 위해 노력한 시간 또한 길었다. 망각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기억나지 않는 시간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지난 2018년부터 일 년간 작업한 <숨겨진, 이제는 드러난>의 시작은 2017년 3월 28일, 처음 경험한 공황발작이었다. 방금 일어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망각에 지배당한 듯했지만, 과거의 어떤 상처들은 이전보다도 더 뚜렷한 방식으로 나를 괴롭히곤 하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와 타인에게 철저히 숨기기 위해, 나조차도 잊고 살아온 기억이 특히 그랬다.
그 시기를 지나며 집 근처 꽃시장에 자주 들렀다. 예쁜 꽃들을 사다가 며칠 물에 꽂아둔 후 활짝 피어나면 벽에 걸어 말리는 게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말려야 할 시기를 놓쳐 썩어버린 꽃들을 버리는 건 또 다른 괴로움이었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마음속 상처들도 썩히지 않고 잘 말려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스레 말리기도, 방치하다 버리기도 했던 식물들이 마치 내 기억 같았다. 기억을 그저 덮어두기 위해 노력한 시간만큼 변화의 시간 또한 길고 고되리라는 걸 직감하였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면 이 치유의 과정을 작업으로 남기고 싶었다.
2018년 3월 28일부터 2019년 3월 28일까지 매일, 그동안 잊고 있던 과거의 순간들과 다시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닮은 담쟁이 잎 위에 새로이 드러난 기억들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완성된 하루의 잎은 완전히 마를 때까지 매일 사진으로 남아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썩히지 않고 잘 말린 잎들이 그렇게 하나둘씩 쌓여갔다.
되찾은 기억들을 다시는 잊지 않기 위해, 상처를 마주 보고 또 치유하며 담쟁이덩굴과 같은 연대의 과정을 만들어보고 싶다. 하나의 잎을 놓고 보면 손바닥만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서서히 자라나며 벽을 뒤덮는 담쟁이덩굴처럼 말이다. 내가 작업 과정을 통해 내면과 외면의 상처를 드러내고 마주 보며 치유해 냈듯이, 이 작업을 마주한 사람들도 직접 담쟁이 잎 위에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경험을 하기 바란다.
상처를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차마 꺼내어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직면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 힘을 기억하며 용기를 얻고, 나아가 연대하기를 소망한다. 이것이 내가 작업을 통해 사람들과 관계 맺고자 하는 방식이다.
일러두기
모인 기억들은 추후 작가의 활동 과정에서 소개될 수 있다. 잎에 적힌 정보들 외에는 어떤 것도 함께 알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중적인 공개를 원치 않는다면 언제든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경험 또한 작업의 일부라는 걸 말해 둔다.
작업에 앞서,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언제든 멈추어도 좋다. 작업이 시작된 후에도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럴 땐 조금이라도 더 가벼운 이야기로 대체해도 좋다. 물론 작업을 중단하는 것도 괜찮다. 마음의 준비만 된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마주하기 Ⅰ
작업과 프로그램의 취지가 잘 이해되었다면 작가와 대화하며, 혼자서는 직면하기 어려웠던 기억을 상기해 본다. 이때 나눈 이야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비밀에 부칠 것을 서로 약속한다.
살면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던 시기는 언제인지, 그 시간은 어떻게 지나왔는지 떠올려 보자. 직면할 수 없어 도망쳐온 기억에 대해 말해도 좋다. 그 기억을 마주할 힘이 이제는 생겼을 수도 있다. 사실 어떤 이야기든 괜찮다. 그저 진솔하면 된다.
연습하기
대화가 끝나면 홀로 독립된 공간에 앉아 작업을 진행한다. 힘을 주는 것도, 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손에 펜을 쥐고,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담쟁이 잎 위에 글씨를 써보자. 그래야만 연약한 잎이 그 자극을 버텨낸다. 다른 존재에 생채기를 내지 않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잎 고르기
어느 정도 연습이 끝났다면 내 기억을 써 내려갈 담쟁이 잎을 고를 시간이다. 기억처럼, 담쟁이 잎 또한 모양이 제각각이다. 글의 길이와 결을 고려해서 가장 알맞은 잎을 고르자. 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면 큼직한 잎을,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조그만 잎을 고르면 된다.
드러내기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다. 먼저, 좌측 상단에 이름 또는 닉네임을, 우측 상단에 20OO.OO.OO의 형식으로 오늘 날짜를 적는다. 담고 싶은 글보다 큰 잎을 골랐다고 해서 반드시 여백을 채울 필요는 없다. 이야기는 언제든 멈출 수도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 준비된 만큼만 꺼내어보자.
마주하기 Ⅱ
작업이 끝났다면 잎을 작가에게 전달한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말렸듯 잎을 벽에 걸고, 글이 적힌 직후부터 완전히 마르기까지의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할 것이다. 작가가 매일 전송해 주는 사진을 보며 기억이 잘 말라가는 과정을 지켜보자.
간직하기
잎이 완전히 건조된 후 작가에게 잎을 돌려받는다. 잘 마른 기억이 오래도록 당신과 함께하기를 바란다.
마음이 지친 시기를 지날 때면 늘 혼자이기를 택했다. 관계로부터 받는 상처가 무서워 관계로부터 받는 위로조차 애써 외면했다. 혼자라고 해서 상처받지 않을 리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숨겨진, 이제는 드러난>을 작업할 때도 그랬다.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드러내야 했지만, 작업을 하는 동안만이라도 조금 더 숨기고 싶어 집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은 채 늘 혼자 지냈다. 사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드러내기가 더 어려웠다. 혹시나 나를 이전과 다르게 대할까 무서웠다.
노을, 썬융, 치치, 차차 외에도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기간에 만난 사람마다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길 부탁했다. 모두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말해주었다. 열 장이 넘는 잎이 모였다. 그 기억들을 그들과 함께 지켜보며 잘 마르길 기도했다.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마주할 때마다 내 기억과 겹쳐 보였다. 마음이 찌릿하기도, 울렁거리기도 했으며 때론 울컥했다. 그들이 기억을 마주하는 과정을 함께 지지하고 싶었다. 그럴 힘이 이제는 생겼다는 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를 상처입힌 것도 관계이지만, 결국 치유해 낼 수 있는 것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손바닥 같은 담쟁이 잎이 모여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와 함께 기억을 나누어준 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또 다른 누군가도 이런 경험을 할 용기를 내기 바란다. 그렇게 우리의 담쟁이덩굴이 계속해서 자라났으면 좋겠다.
*노을, 썬융, 치치, 차차와 함께 도봉문화재단 지역 청년 예술인 프로젝트 <예술하는 마음>의 일환으로 진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