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에게>는 외면과 내면의 상처를 다른 존재의 것과 맞대어보는 과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이때 서로의 흉이 얼마나 깊은지 비교하기보다는 연대하려 합니다.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관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습니다.
작업의 시작은 제게 새로 생긴 흉터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큰 흉터가 가장 잘 보이는 곳, 왼쪽 손등, 네 번째 손뼈와 마지막 손뼈의 사이 지점에 새로이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를 얻고 한동안은 사람들이 제 안부보다 흉터의 안부를 더 궁금해했습니다. 숨겨야 하는 것, 있어서 좋을 게 없는 것이라는 시선이 또 다른 상처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살아온 흔적일 뿐인데 이걸 왜 없애고 숨겨야 하느냐는 반감이 커졌습니다.
흉터는 ‘상처가 치유되고 남은 흔적’이기에, 그 자체로 잘 살아냈음을 방증합니다. 가장 깊이 새겨진 삶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식물의 상처, 잔뿌리, 마른 잎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썩지 않고, 몸의 일부를 포기하면서라도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죠. 손등의 상처를 계속 바라보다 보니 식물의 마른 잎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조금은 쪼글쪼글해졌지만, 그 형태가 계속 온전하게 남은 채 말라버린 잎 같다고요. 그러고 보니 저의 반려 식물들도 저처럼, 꾸며지기보다는 자유롭게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대상과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려는 ‘짝이 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반려가 되려면 저와 제 식물들처럼 가장 보여주기 어려운 부분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를 잘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아픈 부분이 닮았을 때 가장 가까워지고, 서로를 이해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똑같은 상처를 가진 대상은 없을 테니, 닮은꼴 그림자를 찾았습니다. 비슷한 상처를 지닌 존재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와 식물의 흉을 서로 드러내놓고 마주한 다음 함께 모아 두고 관찰해보았습니다. 비슷한 것은 맞대어 보고 다른 것들은 어떻게 다른지 살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마른 잎들을 집어 모은 후 제 상처를 드러내 비슷하게 생긴 마른 잎 하나를 올렸습니다. 직접 몸에 이리저리 맞대어 보며 그 상태 그대로 사진을 촬영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제 상처를 가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 흉을 찍은 사진을 프린트하고 그 위에 마른 잎을 올림으로써 저와 식물의 상처가 각각 온전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작업을 발전시켰습니다.
서로가 간직해 온 그림자의 모양을 맞추자, 상처를 덮어주는 게 마치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떨어져 나간 딱지 같기도 했죠. 그렇게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