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에서

열차 안에서 만난, 함께 늙어가는 사랑에 대하여

by 가이아


얼마 전 강사 면접이 있어 서울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주말 오후의 열차는 늘 그렇듯 붐볐다. 여행 가방을 끌고 타는 가족들, 고향에 다녀오는 듯한 중년의 얼굴들, 그리고 나처럼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지만, 각자가 향하는 삶의 목적지는 조금씩 달라 보였다.
지정된 좌석을 찾아 앉았을 때 맞은편에는 중년의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열차 안에서 흔히 마주치는, 함께 이동하는 부부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처음 몇 분은 창밖을 보거나 휴대폰 화면을 넘기며 그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상하게도 시선이 자꾸 그쪽으로 향했다. 이유를 바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눈길을 끌 만큼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고,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그래서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몸이 불편해 보였다.
창밖을 보려고 할 때마다 고개를 유난히 가까이 숙였다. 시력이 좋지 않은 듯했다. 체격은 작았고 손목과 팔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면 잠시 멈춰 서서 몸의 중심을 잡아야 했다. 그 잠깐의 정적이 이상하게도 눈에 남았다.
그 모습이 내 마음에 오래 남은 이유는, 곁에 앉은 아내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웃고 있었다. 화사하게 웃는 얼굴도 아니었고, 소리 내어 웃는 모습도 아니었다. 입가에 살짝 걸린, 아주 작은 미소였다. 그 미소는 열차가 달리는 동안 거의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이 물을 마실 때도, 창밖을 볼 때도, 무언가를 찾느라 가방을 뒤적일 때도 아내의 시선은 늘 남편에게 향해 있었다. 지켜본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아내는 과하지 않았다.
"괜찮아?" 하고 묻지 않았고, "내가 해줄게"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작은 가방에서 약을 꺼내 조용히 건넸고, 물병을 손에 쥐어주었다.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설 때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설명할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미리 준비한 듯하면서도, 생각 없이 몸이 먼저 움직인 것 같은 순간들이었다.
그 모든 행동이 너무 익숙해 보여서, 나는 그들이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봄이 아니라 일상이었고, 배려가 아니라 습관이었다. 특별한 마음을 먹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의 모습이었다.
나는 창밖을 보는 척하며 그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결코 극적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다정함도 아니었고, 일부러 연출한 친절도 아니었다. 요즘 말로 하면 SNS에 올릴 만한 장면도 아니었다. 사진으로 남기기에는 너무 조용했고, 설명을 붙이기에는 너무 평범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울렸다.
사랑이 꼭 눈부셔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날의 사랑처럼 뜨겁게 타오르지 않아도, 매 순간 설레지 않아도, 사랑은 이렇게 조용히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이 가만히 와닿았다.
옆에 있어주는 것.
말없이 손을 내미는 것.
상대의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오래 함께한 사람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가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통로 쪽이 조금씩 붐볐다. 나도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때 맞은편에서 남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그의 팔을 잡았다.
그 순간,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괜히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너무 보기 좋으세요."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웃으면서.
아내는 잠시 놀란 듯하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남편도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짧은 인사였다. 대화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짧았지만, 그 미소는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플랫폼 위로 먼저 걸어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나란히 걷는 속도, 서로를 살피는 간격, 말없이 맞춰진 보폭.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슬퍼서가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때문이었다.
부럽다는 말로도, 감동적이라는 말로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
어쩌면 경외감에 가까운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을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면접은 무난하게 끝났다.
잘 봤는지는 모르겠다. 면접장에 앉아 있는 내내 자꾸만 그 부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질문에 답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 같은 노선의 열차를 탔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누군가와 함께 늙어간다는 건 정말 어떤 기분일까. 오늘 본 그 부부처럼,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곁을 그렇게 지킬 수 있을까.
그날 나는 내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앞서 걸어가는 사랑의 한 장면을 잠시 엿본 것 같았다.
그 장면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열차는 계속 달렸고, 그 부부는 내렸고, 나는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순간은 조용히 마음에 남아,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목에서 이런 장면들을 만나기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스쳐 가지만, 인생의 방향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순간들.
누군가의 뒷모습이, 짧은 미소가, 말없이 내민 손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순간들.
그날 열차 안에서 만난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아주 조용하게 '함께 산다는 것'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 마음에 품은 채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지금도 가끔 열차를 탈 때면 그날이 떠오른다.
그 부부는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함께 걷고 있을까. 나는 그렇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열차 안 풍경이 되어 그렇게 걸어가고 싶다.
말없이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곁을 지키며, 함께 늙어가는 사람으로.
그것이 아마도, 내가 그날 길목에서 배운 사랑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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