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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해봤자 안돼" 덕분에

두려움에 관한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보내는 글이자 첫 발행 글

저는 어릴 적에 아버지로부터 어떤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게으르다, 편식한다, 끈기가 없다, 공부는 안 하고 딴짓만 한다… 아버지의 잔소리에 저는 아무리 무엇을 하더라도 잘하는 게 없다고 여기며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공부뿐만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그리고 연애에서도 갈등이 일어나면 전부 나의 잘못으로 돌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성실하고 열정적이라며 칭찬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느끼기보다는 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속임수 같았습니다. 오로지 아버지의 인정 만을 갈구했습니다. 그럴수록 저 자신이 지닌 것에 집중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에 질투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어차피 해봤자 안돼."라는 말이 들렸고, 환청처럼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성인이 된 저를 아버지가 더는 꾸짖지 않음에도 말입니다. 스포츠캐스터라는 꿈이 있었지만, 단 두 번의 시험에 떨어진 후, “어차피 해봤자 안돼"라는 말로 그 꿈에 스스로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아나운서라도 수십 번의 도전 끝에야 목표를 이룬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대학 졸업 후 번듯한 직장에 취직했기에 안정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회사와 직무를 가진 이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소개팅에 실패하면 내 직장이 좋지 않아 그런 거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퇴직과 이직 또 다른 퇴직 끝에 우연한 기회로 독서 토론 강사가 되었습니다. 프리랜서가 되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은 돈을 벌게 되었지만, 대신 세상과 잠시 떨어졌고 많은 책을 만났습니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와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에게 욕망에 따라 열중하는 삶을 배우고, 《무진기행》에서는 서울에서 무진으로 향하는 윤희중에게서 속물 같던 과거와 경제적 결핍에서 헤매는 현재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를 만났습니다. 끊임없는 책의 질문에 치부가 드러난 듯이 발가벗은 느낌이었지만, 대신 맨얼굴과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만 불행하고 힘들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프란츠 카프카도 나처럼 아버지를 싫어했고, 빅토르 위고도 마감 시간에 쫓겨도 글을 쓰지 못해 괴로워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책을 읽다 보니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어차피 해봤자 안돼"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글을 쓰다가 멈춘 것도 여러 번, 다 쓰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 또 고치고…. 2018년 여름 '해준'이라는 필명으로 '브런치' 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저의 글을 보고 험담하거나 비난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차피 올려봤자 안 볼 거야"라는 속삭임에 두려움에 사무친 채 써 놓은 글을 아직 하나도 올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년 전 이맘때, 제가 응원하는 NBA 농구팀 토론토 랩터스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한 일은 제 삶의 관점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기고 있으면 흥분해서 곧잘 역전을 당하고, 큰 경기에 새가슴이 되어 제 실력을 발휘 못 하는 것이 이 팀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들이 밥 먹듯이 패배할 때마다, "어차피 해봤자 안돼"라고 말하면서도 15년 동안 이 팀을 계속 응원했습니다. 저와 비슷하다고 여겨서인가 봅니다. 2019년 랩터스가 NBA 챔피언이 되면서, 그 말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 말과 대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과거에 남긴 메모들을 살펴보니 "어차피 해봤자 안돼"라는 말은 바로 나 자신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칭찬을 받고 싶은 욕구가 지적을 받지 않겠다는 집착으로 연결되었고, 완벽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회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불안함과 불신, 그리고 열등감으로 점철된 메모들과 랩터스를 응원한 이야기를 결합해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8월, 저는 《랩터스》라는 이름으로 첫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해봤자 안돼"라는 말은 저를 무던히도 괴롭혔습니다. 그 말이 귓가에서 사라졌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 때문에 여전히 써야 할 것이 많은지도 모릅니다. 그 말은 불만 끄면 윙윙하고 나타나는 모기 같습니다. 집에서 늘어진 채 있으면 그 말이 귓가에 맴돌고, 몇 자라도 적으러 카페로 나가게 만드니까요. 돌이켜보니 "어차피 해봤자 안돼" 덕분에, 저는 글을 쓰는 작가를 꿈꾸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한 마디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글을 쓰라고 다독이는 친구 때문에 결국 그렇게 불신하던 나 자신을 인정하는 날이 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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