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하고 포기하고 다시 도전하는 20대의 마지막을 보내며.
무언가를 시작하는 건 늘 쉽다. 하지만 그걸 끝까지 붙잡는 건 나에게 유난히 어렵다. 어떤 것을 하고 싶으면 충동적으로, 경제적으로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 한에서 바로 시작해버리고,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바로 포기해버린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잘하지 못하면 금세 포기해버리는, 그런 많은 사람들 중 하나.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그게 지금의 나인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도해 본 것들이 있다. 최근 두 달 동안 해 본 것은 나만의 앱 만들기, 인스타툰 작가 되기, 일본어 배우기. 나만의 앱 만드는 것은 만들긴 했지만, 어느 정도 완성됐음에도 불구하고 런칭하지도 않았다. 그냥 어느 한인 컨퍼런스에서 이런 앱을 만들었다고 발표하고, 데모도 하고, 작은 상까지 받았지만 “어차피 안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2주 정도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도 다시 시작할까 하다가, 다른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져서 차일피일 미루는 중이다.
인스타툰 작가 되기라는 도전은, 사실 최신 아이패드가 갖고 싶어서 가지게 된 결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패드가 갖고 싶어졌고, 그날 충동적으로 가장 좋은 모델을 샀다. (두 달 뒤에 그 모델의 새 버전이 나왔다는 건 덤이다. 내년에야 나올 줄 알았더니.) 매직키보드와 펜슬까지 풀세트로 장만하고 2주 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리다가, 도저히 늘지 않는 내 그림 실력이 지겨워서 그만두었다. 평생 이과 마인드로 살았으면서 갑자기 문과적인 것을 하려니 맞지 않았던 거지. 결국 그 아이패드는 그냥저냥 공부하면서 쓰고 있지만, 더 이상의 쓸모가 사라져버렸다. 반품 시기는 한참 지나서 이제는 반품도 할 수 없다. 언젠가 또 색다른 취미가 생기거나, 다시 그 취미를 이어가고 싶을 때 가끔 꺼내 들겠지.
일본어 배우기는, 그냥 더 이상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때 자막을 보지 않고 보고 싶어서 시작했다.
마침 연말 여행으로 일본에도 갈 예정이었는데, 작년에 갔을 때 영어로 대화하기엔 영어 문화가 덜 발달된 시골에 방문했을 때 대화가 꽤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행 전에 일상 일본어로 제대로 대화해보고 싶었다.
미국에서 부가세가 잔뜩 붙은 일본어 문법 교재와 일본 서적들을 잔뜩 사들고 2주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어느 정도 귀가 트이는 것 같더니, 단어 외우기와 특히 한자에서 너무 막혀버려서… 결국 이것도 일주일째 쉬는 중이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시도하고 포기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졌을까.
별생각이 없다가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 이상의 목표가 없어서 그런 걸까? 정처 없이, 목표 없이 가려고 하니까 불쑥불쑥 나타나는 취미에 반짝 열정을 쏟다가 그만두고… 그러는 이유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면서도 더 이상의 발전을 그리고 있지 않아서일까 싶기도 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인기가 떨어졌지만 내가 취업할 때까지만 해도 인기가 어마어마했던 IT 업계에서 일하게 되었고, 나름 안정적인 수입에 만족하며 나랑 비슷한 안정적인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네트워킹하는 삶에 만족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꿈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직장인 생활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평일에 일하고 일 끝나고 돌아오면 기력이 남아있지 않아 무기력하게 유튜브를 보며 서너 시간을 떼우다 보면 어느새 밤 시간. 요즘은 또 겨울이 다가오면서 해가 너무 일찍 지니, 더더욱 밤에 나갈 일도 없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가면 매일 밤이 허무하기 그지없다. 물론 지금 이 시기가 지나고 돌이켜보면, 이 자유로운 일상을 그리워할 그런 바쁜 때가 오겠지. 그때가 되면 지금 이 내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는 시기를 그리워하겠지.
근데 또 그렇게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다가도, 뭐, 그만두면 어때? 어찌 됐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왜 나는 항상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 이상을 원하며 그걸 가지지 못해서 발버둥 치다가, 다시 내 삶에 만족하고... 이게 반복일까.
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취업은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수많은 면접에서 떨어지며 서글프고 불안정했던 학생 시절을 지나, 잘릴까 봐 매일이 가시밭길 같았던 신입사원 시절을 지나, 어느 정도 지금의 내 생활에 적응하다 보니 이제서야 내 삶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다.
근데 뭐, 이렇게 계속 시도해보고 부딪혀보는 삶이,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아마 앞으로도 계속 도전을 포기하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