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보다 선생님이 먼저 내 마음을 움직인 이야기
금요일은 나에게 ‘민화 수업 가는 날’이다.
누군가에게는 취미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전통미술 체험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금요일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사실 나는 민화에 엄청난 흥미가 있는 사람은 아니다.
처음 이 수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민화에 대한 열렬한 동경이라기보다
남편이 “너랑 잘 맞을 것 같다”고 추천해준 것도 있었고,
사주상 “전통미술이 잘 맞는다”는 이야기(부끄;;)를 들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가볍게 시작했다.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 정도로.
하지만 1년 넘게 꾸준히 다닌 이유는
민화 때문이 아니다.
나는 대부분의 배움에서 초반 불타는 타입이다.
새로운 걸 배우면 눈이 반짝이고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빠르게 이해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흥미가 서서히 식고
결국 어느 순간 멈춰버리는 타입.
민화도 그럴 줄 알았다.
예상대로라면 몇 달 하고 흐지부지 끝났을 텐데
민화만은 이상하게 달랐다.
민화 자체가 내 스타일이었던 것도 아니고
처음 배울 때 “와, 이건 내 천직이다!” 이런 감정도 전혀 아니었다.
유난히 내 마음을 붙잡아 두는 건
단 하나, 선생님의 존재 그 자체였다.
내가 배우는 사람을 판단할 때
특별히 예민한 부분이 있다.
나는 처음엔 맹목적으로 믿다가
어떤 순간 실망하면
배신감처럼 느껴져서
그 자리에서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거리감이 적당히 있으면
오히려 오랫동안 마음이 깊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번 경우는 후자였다.
민화는 나에게 큰 감흥이 없었지만
김효순 선생님은 내 스타일 그 자체였다.
목소리, 태도, 가르치는 방식, 설명의 단정함,
그림에 대한 깊이와 신념 같은 것들.
어쩌면 나는
민화라는 그림을 배우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인간의 태도’를
배우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민화 수업 초반에는 그만둘 생각도 있었다.
‘음… 민화는 내 길이 아닌가 보다’
그렇게 마음을 접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선생님의 개인전 오프닝에 초대되어 갔고
그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전시장에서 마주한 선생님의 최신작들.
그 작품들 앞에서 나는 말 그대로 멍해졌다.
“이 선생님… 이런 생각을 하고 계셨구나.”
“이런 세계를 그리는 분이었구나.”
겉에서 보던 민화 선생님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창작자,
강렬한 철학을 가진 예술가였다.
그런 작품 세계에 반해버렸다.
그때 느꼈다.
아, 나는 이분에게 배우고 싶구나.
그림보다 사람이 먼저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바쁜 프리랜서 생활 속에서도
카페 운영과 여러 프로젝트 속에서도
나는 금요일이면 꾸준히 수업을 간다.
카페 운영시간 때문에
요즘은 2시간밖에 못 듣는 날도 많다.
하지만 그 2시간이 나에게는 귀한 시간이다.
집중하고, 숨 쉬고, 나를 놓아주는 시간.
뒤심이 약한 나에게
‘꾸준하다’는 경험을 만들어준 거의 유일한 시간.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생님이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그 공간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선생님은 인사동에 작업실이 있고
나는 집에서 가까운 서울시립대 수업을 듣고 있다.
(알려주면 안되는데...우리선생님..나만 알아야하는데ㅜㅜ)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항상 마음이 조금 밝아져 있다.
선생님이 멀리서 걸어와
살짝 툭 한마디 해주시고 지나가는 순간,
그게 참 귀하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귀하다.
낯설지만 안정적인 거리감,
부드럽지만 단단한 지도 방식.
나는 그 거리에서 받는 ‘광(光)’이 좋다.
그 빛이 나를 조용히 움직이게 한다.
오늘은 아교 포수 이야기로 시작하려다가
결국 선생님 예찬글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나에게 민화는
그림보다 사람으로 기억되는 시간이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그 사람을 닮아간다는 감각.
금요일마다 나는 그 감각을 배운다.
여러분은 “사람 때문에 꾸준해진 경험”이 있나요?
어떤 관계가 여러분을 한 방향으로 계속 이끌어주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