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선생님의 한 말씀
지난번 민화 선생님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나서, 그날 이어졌던 또 하나의 장면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사실 이날 쓰고 싶었던 원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수업 중 선생님은 옆에서 다른 수강생분의 그림을 봐주시고 계셨다.
그러다 학생이 “선생님, 제 아교포수가 좀 이상하게 된 것 같아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선생님은 그림을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체 과정이 다 중요하지만, 특히 맨 처음 아교포수가 정말 중요해요.
아교가 어떻게 발렸느냐에 따라 색이 얼마나 잘 올라가는지, 바림이 얼마나 매끄럽게 되는지가 달라요.
그런데… 이것은 아교포수가 조금 진하게 됐네요.
뭐든 모자란 게 차라리 나아요. 아교가 너무 진하면 바림도 힘들고 색도 잘 안 올라가요.”
나는 순간, ‘아!’ 하고 번쩍했다.
그리고 재빨리 수첩을 꺼내 그 문장을 기록했다.(하핫)
민화를 처음 배웠을 때, 나는 아교포수 때문에 꽤 고생을 했다.
아교를 너무 진하게 바르면 종이가 뻣뻣해지고, 색이 스며들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묽게 바르면 몇 번이고 올라가지만, 금세 자연스럽게 맞춰진다.
하지만 선생님이 말한 핵심은 단순히 기법이 아니었다.
그 말은 오히려 삶의 태도에 더 가까웠다.
“모자란 게 낫다.”
“과한 것보다는 덜한 것이 훨씬 낫다.”
이 짧은 문장 하나가 머리와 마음에 동시에 꽂혔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뭔가 부족하면 채우려 한다.
모자란 만큼 움직이고, 배운 만큼 다시 더 나아가고 싶어진다.
부족함은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힘이 된다.
반대로 무언가가 넘쳐버리면,
그 넘침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과 불안이 생긴다.
이미 많기 때문에 잃을까 봐 조심스럽고,
그 많음이 언제 어떻게 줄어들지 모른다는 걱정이 따라다닌다.
민화에서 아교포수 농도 하나가 작업 전체의 흐름을 결정하듯,
삶에서도 그런 시작점이 있다.
처음부터 너무 과하면 진행이 어렵다.
힘이 들어가고,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줄어든다.
그런데 조금 모자라면?
조금 더 보완하면 되고,
조금 더 배우면 되고,
조금 더 시간을 들이면 된다.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생긴다.
나는 이 문장을 듣자마자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항상 과하게 하려 했던 내 성격,
더 완벽하려고, 더 잘하려고, 더 빨리 가려고 했던 마음들.
그 모든 과함이 결국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선생님의 담백한 한마디가 내 마음을 한순간에 정리해주는 느낌이었다.
민화는 정말 삶을 닮았다.
너무 힘줘 칠하면 붓자국이 남고,
너무 욕심내서 색을 얹으면 탁해진다.
조금 모자라야, 조금 비워두어야 그 여백에서 빛이 난다.
그리고 인생에서도, 관계에서도, 일에서도
모자란 쪽이 훨씬 건강하고 오래간다.
수업에서 스치듯 흘러나온 말이었지만
그날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 문장이었다.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너무 꽉 채우려 하지 말고
조금 모자란 지점에서 숨을 고르고 싶다.
그것이 더 오래 가고, 더 편안하고, 더 아름다운 결과를 만든다는 것을
민화가, 그리고 선생님이 몸소 보여주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