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흐릿하면서도 명확하고,
감정은 구체적이면서도 모호하다.
나는 그 복잡하게 뒤엉킨 시간의 흔적들을
그림이라는 행위를 통해 기록하고 싶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향기와 온기,
그리고 그때의 감정들이
마치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것을,
하나씩 차근차근 종이 위에 풀어보고 싶었다.
재료를 고민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했다.
결국 선택한 건 동양화 종이와 분채였다.
이 재료가 내게 끌린 이유는,
종이 위로 번지는 분채의 느낌이
마치 기억과 감정이 우리의 마음속에 스며들고
각인되는 모습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분채 특유의 은은하면서도 깊이 있는 색감은
기억이 가진 미묘함과 감정의 복잡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형태는 의도적으로 불명확하게,
다양한 색의 선과 패턴들이
얽히고 겹쳐지도록 했다.
그 조각조각의 형태와 색들은
각각 나의 내면 깊숙이 머물고 있는
특정한 기억과 감정의 조각들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기억이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고 느끼는 순간마다
계속해서 변주된다는 걸 느꼈다.
그림을 마치고 나면, 기억은 새롭게 태어나며,
감정은 다른 빛깔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의 작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시간과 기억,
그리고 감정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남아있다는 것.
그렇게 나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 또한,
각자의 기억과 감정들을 꺼내볼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작업에서는 더욱 개인적이고
깊숙한 감정들을 풀어내고 싶다.
질감과 레이어링,
그리고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도 더 이어나갈 생각이다.
감정과 기억이 흐르고 쌓이고 흘러넘치는 이 느낌을,
그림이라는 공간 속에서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전시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