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를 그린다는 건
단지 예쁜 전통 그림을 베껴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건,
한 시대의 염원과 상징,
그리고 나 자신의 바람을
동시에 펼쳐놓는 일이다.
종이 위에 붓을 얹기 전,
나는 항상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흔히 민화를
“옛 그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민화는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회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 당시 사람들이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냈는가를
화면 위에 남긴 정서의 기록이다.
그러니 오늘날 민화를 그린다는 것은
지금 내 마음의 형상화를
과거의 형식 위에 담아내는 일이다.
그림이라는 껍데기는 전통의 옷을 입었지만,
그 속은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기도,
나의 질문,
나의 기억들이다.
1. 기도처럼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
민화를 그릴 때,
선 하나하나를 따라 그리는 시간은
묵언수행처럼 고요하다.
파초의 잎맥을 따라가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되고,
물고기의 비늘을 반복해서 그리며
내 안의 불안을 잠재운다.
예술이라기보다는
기도 같은 행위다.
그림 속에 마음이 가라앉고,
어느새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
2.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접점
호랑이를 그릴 때,
단순한 상징 이상의 이야기를 담는다.
과거에는 액운을 쫓는 수호신이었고,
지금의 나는
삶에서 무서운 감정을 직면하는 상징으로 호랑이를 사용한다.
같은 호랑이지만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그 차이를 감각하는 것,
그 위에 ‘나’를 덧입히는 것이
민화를 ‘지금’ 그리는 이유다.
3. 감정의 물성화 — 색, 결, 종이 위의 흔적들
분채는 그 특유의 거친 감촉 덕분에
감정이 그대로 스며든다.
조금 거칠게 붓이 지나간 자리,
색이 스며든 종이의 결,
바림의 흔들림 하나까지.
이 모든 것이 감정의 물성이 된다.
그러니까 민화를 그리는 건,
감정을 ‘보이는 형태’로 옮기는 일이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어디선가 잊고 있던
오래된 장면들이 스며나온다.
어릴 적 보았던 담장 너머의 파초 잎,
외할머니 댁 부엌 한켠에 있던 수복문양의 그릇,
명절 때 집안 어른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던 모습.
이런 장면들은
그림을 그릴 때
그림보다 먼저
내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민화를 그린다는 건
시간을 거슬러 기억을 꺼내고,
그 기억을 오늘의 색으로
다시 칠하는 일이다.
나는 민화를 창작할 때
이 세 가지 기준을 늘 되새긴다.
1. 전통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는가
형식과 상징, 배치의 의미를 공부했는가?
2. 지금의 감정을 담고 있는가
오늘의 내가 무엇을 바라는가?
3. ‘나’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가
그 오브제가 왜 나의 그림에 필요한가?
단지 에어팟을 그려 넣는 게 아니라,
‘왜 그걸 넣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그것이 창작 민화라고 생각한다.
민화를 그릴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 많이 들여다보게 된다.
복잡한 색감을 조합할 때
나는 내 감정의 결을 본다.
어느 부분이 너무 진했는지,
어디서 마음이 삐끗했는지,
그림은 말없이 내 마음의 거울이 되어준다.
그래서,
민화를 그린다는 것은
그림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해가는 과정이라 믿는다.
민화는 멈춘 그림이 아니다.
흐르는 감정이자,
살아 있는 기록이며,
마음을 다스리는 행위다.
지금도 붓을 잡는 이유는
내 안의 이야기를 조금 더 꺼내고,
그 이야기를
전통이라는 언어로 조용히 말해보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