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계속 고민 중
요즘 나는 자주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현대민화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장르적 정의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왜 전통의 그림을 현재에 그려야 하는가
묻는 일이기도 하다.
‘전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종종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에서
차갑게 빛나는 유물들이 떠오른다.
움직임이 멈춘, 과거의 상징.
하지만 나는 그림이 그렇게 고여 있기를 원치 않는다.
전통은 박제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호흡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숨 쉬고, 변하고, 다시 읽히는 것.
그럴 때에만 그림은 시대를 넘어 살아남는다.
그래서 나는 현대민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전통의 언어로 나를 말하는 방식.
여기서 ‘전통의 언어’란
파초, 모란, 봉황, 십장생 같은 도상을 뜻할 수도 있고,
민화 특유의
화면 구성, 패턴, 상징체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그저 ‘소재 차용’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현대민화는 형식과 감각마저
나의 감정과 삶에 맞게 재조정하는 과정이다.
전통을 빌려 쓰되, 내 언어로 재작성하는 일.
많은 사람들은 민화라 하면
분채와 한지,
혹은 먹과 채색을 떠올린다.
그 재료들이
오랜 세월 민화를 지탱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유화를 선택한 이유는
현대민화가 재료의 틀까지
깨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화의 질감, 두께, 깊이감은
전통 채색에서 느끼지 못한 감각을 준다.
이것은 ‘민화의 변질’이 아니라,
민화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현대민화를 그린다는 것은
두 가지를 동시에 붙잡는 일이다.
1. 전통의 뿌리 — 내가 딛고 서 있는 역사와 미감
2. 지금의 호흡 —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감정
나는 이 두 가지가
서로를 살려낼 수 있다고 믿는다.
전통이 현재를 만나 더 넓어지고,
현재가 전통을 만나 더 깊어지는 방식으로.
전통의 형식을 깨되, 그 본질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현대민화는 어디까지 변형할 수 있을까?
나의 감정을 담아낸 현대민화는 과연 ‘민화’라 불릴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아마도
오랫동안,
내 작업노트의
첫 장을 채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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