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하는 중심, 예술이라는 기둥

김가인 에세이

by 김가인 오로시

오늘 아침, 남편과 짧은 대화를 나누다 문득 내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왜 이렇게 자꾸 공허함이 찾아오는 걸까?”


프로젝트가 끝난 직후에도, 전시가 마무리된 순간에도, 심지어 좋은 평가를 받고 나서도 나는 공허하다.

끝나기를 그토록 바라던 일이 끝났는데, 왜 마음은 이렇게 허한 걸까.



인간은 죽음을 알고 살아가는 존재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결국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하루하루는 그 끝을 향한 계단이다. 어떤 날은 가파르고, 어떤 날은 느슨하지만, 방향은 똑같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이런 생각이 스친다.
“굳이 이렇게 애써야 할까? 그냥 먹고 자고 돈 벌고 쓰고, 그렇게 흘러가듯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곧 또 다른 목소리가 속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죽음을 알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중심이 필요하다.”



나를 살게 하는 중심


그 중심이 무엇일까. 나에게는 분명하다.
바로 그림과 시다.

세상이 흔들려도, 내가 무너져도, 결국 다시 돌아와 붙잡는 건 붓과 펜이다. 그 위에 내 마음을 얹는 순간, 나는 다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림은 내 마음의 색이고, 시는 내 마음의 호흡이다. 이 둘은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자, 나를 나답게 만드는 기둥이다.




기둥이 있어야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흔들린다.

관계가, 경제가, 건강이, 일상이 끊임없이 흔들어댄다.

그런데 만약 내 안에 기둥이 없다면? 바람에 날려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기둥을 굳게 세워야 한다. 그림과 시라는 기둥. 그 안에서 나는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다.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다.




예술은 나의 생존 방식

누군가에게는 예술이 취미일 수 있고, 직업일 수 있고, 혹은 그냥 멀리서 감상하는 문화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예술은 생존 방식이다.


살아가기 위해 먹고 자는 것처럼, 나에게는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시를 쓸 때, 나는 잠시 죽음의 그림자를 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음을 마주 보면서도 웃을 수 있다. 그것이 예술이 내게 주는 힘이다.




공허감은 내 식물이 물을 달라는 신호

때로는 공허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건 나의 마음속 식물이 물을 달라고 하는 신호다.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어버리듯, 나도 예술이라는 물을 주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중심에 물을 준다. 붓을 들어 색을 놓고, 펜을 들어 문장을 쓴다. 그 행위 하나하나가 내 중심을 단단히 세우는 일이다.




나를 지탱하는 이유


나는 어떤 일을 하든 결국 ‘나’라는 존재로 세상에 서 있다.


사업을 하든, 책을 내든, 가족을 돌보든, 그 모든 일 위에 서 있는 건 바로 ‘나’다. 그런데 ‘나’라는 중심이 무너지면 그 어떤 것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예술은 내 삶의 장식이 아니라 뼈대다. 나를 지탱하는 이유이자, 내가 살아가는 명분이다.




오늘의 기록

나는 시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것은 단순한 직업이나 취미가 아니라, 내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공허감이 찾아올 때마다 다시 확인한다. “아, 이것이 내 기둥이구나. 이것이 나를 살리는 이유구나.”


그래서 오늘도 마음속 식물에 물을 주듯, 예술이라는 기둥에 기대어 살아간다.


죽음을 알고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나는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지킨다. 그리고 그 중심은 분명, 그림과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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