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나무에게 배운 생명력
겉보기에는 무성하고 잘 자란
올리브 나무였다.
가지마다 잎이 빼곡했고,
흙 위에는 싱그러운 초록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속은 텅 비어 있었다.
겉만 그럴듯하게 자라 있었을 뿐,
안쪽은 마른 가지뿐이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나를 닮아 있었다.
일주일 전쯤이었다.
별다른 계획도 없이,
그냥 그 날의 공기가 좋아서
나무를 싹둑 잘라버렸다.
“이건 아닌 것 같아.”
그 한마디가 입 밖으로 나왔고,
가위를 들었다.
겉에만 잎이 자라 있는 모습이
마치 보여주기식의 삶 같아서,
고민 끝에 과감히 잘라냈다.
가지마다 무성했던 잎들을
다 잘라버리고 나니
한동안은 텅 빈 풍경만 남았다.
그때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
정말 이 나무가 다시 자랄 수 있을까?
이렇게 다 잘라버렸는데,
혹시 이제는 영영 끝난 게 아닐까?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나서,
신비로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삭막했던 가지 끝에서
연약한 초록 잎들이
하나둘씩 솟아오르고 있었다.
딱딱한 나무껍질 사이에서 뿅뿅,
마치 누군가가 밀고 나오는 듯한 생명력.
매일 아침 카페 문을 열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잎들을 바라본다.
이토록 연약한 새순이
거칠고 질긴 껍질을 뚫고
나온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그 작은 존재들이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
“괜찮아, 다시 자랄 수 있어.”
나는 그동안 얼마나
‘겉모습’에 집중하며 살았을까.
잎이 무성해 보이면
잘 자라고 있다고 믿었고,
밖으로 보여지는 초록이
곧 건강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 안은 비어 있었다.
내 마음도, 내 작업도, 내 일상도.
그래서 과감히 잘라냈다.
꾸며진 말, 과한 욕심,
보여주기 위한 성취들을.
겉모습은 초라해졌지만,
그때부터 조금씩 다시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비움은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
처음으로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마치 올리브 나무가
잎을 잃고도 새순을 틔우는 과정과
닮아 있었다.
다 잘라내야만 비로소 다시 자랄 수 있었다.
요즘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인생도 뿌리만 튼튼하다면,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나무가 그걸 보여줬다.
겉의 가지와 잎은 아무리 잘라내도,
잘 내린 뿌리가 살아 있으면 다시 자란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모양과 형태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내 안의 믿음과 의지가
뿌리처럼 남아 있다면
언젠가 다시 무성해진다.
그리고 그 무성함은 이전보다 더 단단하다.
삶을 지탱하는 힘은
화려함이 아니라 복원력이었다.
새로운 잎을 피워내는 힘,
다 잘라내고도 살아남는 힘,
그게 진짜 생명력이었다.
이젠 나무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잘라내야 할까?”
익숙해서, 두려워서,
혹은 나를 지켜주는 척하며
숨 막히게 만드는 것들.
그것들을 하나씩 덜어내야
새로운 나를 틔울 수 있다.
잘라내는 건 아프지만,
그 아픔 속에서 다시 피어난다.
오늘 아침에도 올리브 나무를 바라봤다.
연약한 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손끝으로 살짝 만져보니 따뜻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식물이 자라는 게 아니라,
나도 함께 자라고 있다는 걸.
나는 이제 믿는다.
다 잘라내도 괜찮다고.
비워도 괜찮다고.
살아 있는 한, 뿌리가 있다면
언젠가 다시 이렇게 푸르게 자라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