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여러가지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가르치는 자로서의 고백은 스스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백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혹시 가르치는 자가 가르치는 데로 살지 못해서?”가 아닐까?라는 가르치는 자로서의 자기 반성인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가 가르치는 데로 살지 못하면 배우는 자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리더는, 선생은, 멘토는, 코치는, 아니면 그냥 어른이라는 존재들은, 어쨌든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어떤 형태이던 가르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데로 살지 못하고 있을 때 배우는 자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학교와 세상은 다르다고 이야기하며 처세술이라는 단어로 포장을 하기도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이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주입하려 합니다. 친절해야 한다면서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는 종교인의 입에서 독설과 저주가 나오고, 질서를 이야기하는 어른들의 말과 버스 도착과 함께 바로 무너지는 줄서기의 모습 또한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핸드폰으로 게임하며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은 핸드폰을 붙잡고 몇 시간씩 남 욕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어머님들도 있습니다. 가치를 이야기하는 직장의 선배가 공금은 쉽게 써버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탈세와 절세를 구분 못하는 기업인도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가르치는 자들이 가르치는 데로 살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배우는 데로 하지 못하느냐고 타박합니다.
가르치는 위치에 계신 모든 리더 여러분, 어른 여러분, 선배 여러분,
배우는 자가 배운 데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어찌 보면 가르치는 우리가 가르치는 데로 살지 못해서라는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가르치는 자가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우리가 가르치는 데로 삶으로 배우는 자들이 배운 데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