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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Aug 30. 2019

[인터뷰] 외드로메다에서 온 학교탐험가

'교사는 기성세대와 다른 욕망을 아이들에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를 묻다


 

“나는 실은 지구인이 아니야. 외계인이지. 먼 외드로메다에서 왔어. 전쟁을 피해서 여기 왔는데 사하라 사막에 전기밥통처럼 생긴 우주선을 타고 왔지.......”    


아침에 일어났는데 비가 오면 학교 가기 싫어진다. 그런데 ‘아, 비가 오니까 선생님이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시겠구나. 얼른 가야지.’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선생님이 경기도 어느 시골 작은 학교에 살았다.    


- 애들은 졸업 후 만나보면 가끔 해주던 ‘이상한 얘기’를 그리워해요. 애들 앞에서 쑥스럽고 재주도 없고 그래서 초임 때 개발한 나만의 필살기였는데. 처음엔 잘 안 돼서 퇴근하면 집에 가서 B4 용지에 이야기 설계도를 그렸어요. 아주 치밀하고 능청맞고 뻔뻔하게 황당한 이야기를 계속했죠. 10분 이야기를 하다가 딱 끊고 “오늘 숙제는 다 해왔니?” 물어요. 해왔다고 하면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숙제 안 해왔으면 안 해주니까 애들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숙제를 해 왔어요. 부모님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싸움이 없는 3일이 지속되면 또 이야기를 해주고. 그런 게 애들한테 기대감을 주는 것 같아요.

수업은 분절적 구조로 되어 있어서 들으려면 고통스럽지만 이야기는 본성이더라고요. 담임할 때 서른세 편까지 만들었어요. 어떤 이야기는 한 달반이나 이어져요. 내 생각에 걸작은 ‘고양이 이야기’, ‘남한산성 만두가게’, ‘뒷산에서 만난 토끼’, ‘마법의 마카펜’이에요.


이야기가 끝도 없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데 남성 버전이랄까. 또 다른 걸작이라며 ‘마법의 풍선껌’ 스토리를 들려주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그때의 수업으로 돌아가는 듯 신이 났고 나는 교실 속 아이처럼 빨려 들었다. 애들이 책으로 한번 써 보라고 하고, 졸업생이 “그 이야기 저에게 넘겨주시면 작가가 돼서 책으로 내고 싶어요.” 했다. 25살 된 딸내미까지 “아빠 나한테 해준 얘기 아직도 기억해? 책으로 쓰면 팔리겠는데...” 하길래 혹해서 퇴직하면 B급 동화작가로 활동할까 싶다. 초반에는 결론을 비극적으로 내거나 주인공을 죽이기도 했는데 애들이 항의를 많이 하고 싫어하기에 “주인공이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해.” 했더니 “집에 가서 잘 생각해보시면 살릴 방법이 있을 거예요.” 하더란다.    


- 궁리해서 살려 놓으니 애들이 다 좋아했어요. 보편적 마음이랑 어긋나면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이야기 만들면서 제가 바뀐 게 있어요. 그때까지 염세주의, 비관주의자였는데 재밌는 얘기를 지어내다 보니 내 생각도 밝은 쪽으로 변한 것 같아요. 애들이 너무 슬퍼하거나 우울하거나 하면 저도 좋지 않아요. 애들한테는 슬픔을 감내할 수 있는 한계 시간이 있더라고요.   

 

- 이때 배운 것으로 학부모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미래 사회가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힘들어.”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들은 당신이 말하는 그 미래에 살고 싶지가 않아요. 실제 우리나라 자살률이 높고 청소년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 중 하나가 어른들이 말하는 삶의 태도 때문이에요. 어떻게 말해야 되냐 “미래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일들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그 미래에 소망을 갖고 사는 게 훨씬 더 좋아. 왜냐하면 우리가 뭐가 될지 모르니까.” 그래야 애들이 ‘살만하구나.’ 느끼는 거죠. “살아보니 어려움은 극복 가능하더라. 괜찮아.”라고 해야 애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데 우린 반대로 말합니다.    



외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 학교 탐험가 되다


블로그 프로필 필명으로 썼던 ‘외드로메다’는 정체성과 관계된 별명이다. 92년에 교직을 시작, 30대 초반까지도 학교가 낯설고 힘들었고 지구인 선생님과 말이 안 통했다. 지구인 선생님들은 오늘까지 해 내라는 일을 애들 자습시키고 수업 중에 했다. 공문이며 국회의원 요구자료 같은 것이 독촉했다. 선생님은 ‘애들은 어떻게 하죠?’ 묻는다. 그러면 외계인이 되는 것이다. 수업방법이 통통 튀고 특이해서 애들이 ‘선생님 외계인 같아요.’ 하기도 했다. 그 말이 좋았다.

교육운동을 하다 보니 외계인 같이 생활하다가는 대중들과 소통하기 어렵겠다 싶어 ‘학교 탐험가’로 바꾸었다. 탐험이란 말에 담긴 방랑자, 이방인 같은 기질은 유지하고 있다. 탐험가로서 학교 문제를 연구한다. 한 곳에 머물고 싶지 않은 욕망이 있으나 아이러니하게 한 곳에 오래 근무했다. 남한산초에 33세에 들어가서 10년, 지금 군포의 둔대초에 혁신학교 내부형 공모 교장으로 6년째다. 44세의 젊은 나이에 교장이 되었지만 머리숱이 적어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가 오히려 득이 되었다. 남한산초와 둔대초 사이 쌍령초에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가 리즈시절이었다.

이보다 더 행복했던 시절이 없다. 너무 강렬했던 시기. 2014년 3월부터 6개월 간 있었다. 그때는 남한산 초등학교를 떠나 처음으로 부장도 안 하고 업무도 적고, 늘 했던 학교운영위원도 아니었다. 압박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가벼운 상태에서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 재밌게 잘 지냈어요. 작년에 그 학교에 혁신학교 평가하러 갔던 선생님 한 분이 전화해서, 이 학교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6학년 대표, 부대표가 제 이야기를 한참 했다고 전해줘서 기분 아주 좋았어요.    


‘손바닥 그리기’와 ‘사과문 쓰기’를 했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둘 다 애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고 그냥 나도 참여해서 함께 했던 활동이다. 친한 동료 선생님과 갈등이 있어서 진짜 사과 편지를 쓰고 애들 앞에서 발표했다. 애들이 ‘진짜 보낼 거예요?’하고 물었다. ‘보낼 거야’ 했는데 만나서 말로 전달했다.

둔대초에 와서는 ‘소나무, 바위, 아버지.’가 선생님의 이미지다. 든든하게 버텨준다는 의미인데 아주 맘에 들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유능한 교장 선생님, 유명한 교장 선생님.’이었다. 집에 가서 고민했다. 안 듣고 싶은 말이라서.    



행복에 대한 색다른 시선, 색다른 실천

선생님은 처음엔 알쏭달쏭 하지만 가만히 듣다 보면 빨려 들게 말하는 힘이 있다. 알쏭달쏭한 건 개념어를 일반적으로 알던 뜻과 약간 다르게 쓰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로 저 단어를 쓰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선생님이 몸으로 부딪쳐 직접 깨달아 얻은 비밀 병기를 칼집에서 스르릉 꺼낼 때의 아우라가 보인다.

    

- 부정적인 것이 기본이에요. 의식해서 밝은 면을 본다거나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것은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죠. 그걸 모르고 ‘열심히 하고 애들한테 잘해주면 애들은 고마운 걸 알아서 나한테 고마움을 표시할 거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잘 안 생겼어요. 저는 고마움 표현하는 걸 가르쳐줍니다. 제가 이야기를 들려준 후 애들한테 뻔뻔하게 물어봐요. “표정 보니까 이 이야기는 별로 재밌지 않은가 본데?” “아니에요. 너무 재밌어요.” “목이 좀 아프구나. 고맙다고 말해야 목이 아프더라도 내가 열심히 하지.”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러면 서로 풍성해진 거 같아요. 아이가 표현할 수 있게끔 물어봐 줘야 해요. 나도 실제로 ‘내가 좀 잘하나?’하면서 집에 가서 이야기를 더 개발합니다. 학생과 교사는 호혜적 상호관계가 중요해요.


- 저는 교직에 기대하는 바가 없었어요. 애들 앞에 서는 것이 너무 두려웠고. 이것도 저것도 못할 거 같았어요. 학교 가면 애들 만날 생각에 설렌다는 선생님이 있는데 그러다 좌절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애들은 우리를 설레게 할 만큼 만만하지 않거든요. 같은 반에 있기 싫고 꼴도 보기 싫을 수 있어요. 그건 당연한 거지만. 조금이라도 괜찮은 게 있으면 나한테 보너스인 거죠. 밋밋하게 세상을 바라봐요. 누가 제게 방어적 비관주의에 가깝다고 하더라고요. 맞는다고 생각해요.


- 최근 강의 준비 때문에 인터뷰하다가 교사들이 실현 불가능한 행복을 꿈꾼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교사들은 자유롭길 원하는데 내가 느끼기에 학교는 원래 자유롭지 못한 공간이에요. 강제적이고 조직적이죠. 학교의 본질과 충돌이 있어요. 조금 덜 자유로워도 된다고 생각하면 행복합니다. 자유는 행복의 적이죠. 자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건 편견이나 오해라고 생각해요. 또 조건을 붙이지 않으면 행복합니다. 저 아이만 우리 반에 없다면 행복할 텐데... 하면 행복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괴롭지 않으면 행복이에요. 지금 이 순간 마음이 아주 괴롭지 않으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기성세대와 다른 욕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갑자기 민감하고도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선생님의 눈빛이 더욱 진지해졌다. 어른으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며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면에서 든든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욕망에 대해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느냐. 기성세대와 다르냐. 자료는 없지만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우리나라 성인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프랑스 사람과 우리나라 사람이 중산층의 기준이 아주 다르죠. 프랑스는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공분에 대해 의연히 참여할 것,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인데 우리는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기성세대와 다른 욕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10억이 생기면 감옥 갈 수 있는가?’ 물었을 때, 초등학생 17%가 갈 수 있다고 답변했어요. 좀 더 교육을 받은 중학생이 되면 비율이 줄어들어야 할 텐데 오히려 늘어 39%, 고등학생은 56%가 감옥 갈 수 있다고 답변했어요.(2015년 자료) 누구한테 배웠을까요? 학교 다니는 학생이니까 선생님과 부모에게 배운 거죠. 어른들이 사회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하기도 하는데 우린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죠. 맘대로 안 되는 세상인데 각자의 욕망을 채우기 모자라는 지구에서 어떻게 하면 욕망, 욕구를 잘 실현할까 하는 방향으로 모두가 진화한 것 같아요. 저는 행복하려고 하면 사회적으로 욕망을 통제한다든지, 다른 사람과 섞여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좋다고 봐요. 저도 이 방법을 계속 연구했어요. 이를테면 민주적 학교는 마음대로 안 되는 학교다. 우리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잖아요. 행복한 사람들은 유대감을 갖고, 내가 가진 장점으로 타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목적 지향적 삶을 본질로 생각해요. 스토리텔링의 능력이 있다면 그걸 가지고 애들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냐 하는 것이죠.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 교사가 행복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해볼게요. 첫 번째로 자발적 단절이 필요해요. 퇴근 후 혼자 있는 거죠. 하루 종일 관계가 계속되는데 감정의 총량에 한계가 있잖아요. 다음 조작적 현실에서 탈출하는 거.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에서 자유로워지는 건데. 포모 증후군을 극복할 필요가 있어요.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만 세상의 흐름을 놓치거나 소외되고 있다는 두려움, 스트레스를 느끼는 현상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예측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어요. 선생님들은 대개 직선적으로 살았어요. 예측 안 하기가 어렵죠. 룰대로 살면서 한 번도 학교 밖에서 나가지 않았고 그 룰에서 성공했던 사람들이니까요. 실제 현실 세계는 전혀 그렇지 않죠.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치명적인 단점이 돼요.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직선상에 놓고 자꾸 예측하려고 하면서 현실과 어긋나 불행이 시작됩니다. 이를테면 선생님들이 ‘이런 애 처음 본다.’는 말을 하는데 내가 예측했던 애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충격이 생기거든요. 내 생각의 범위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굉장히 괴로운 거예요. 나 같으면 그런 애를 만나면 ‘왔나 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하지?’ 합니다. ‘요새 이상한 애들이 들어온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회에 어느 순간 스마트폰이 막 들어온 것과 똑같아요. 과거에 옳다고 했던 것이 시대와 함께 바뀌었을 때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해요. 지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익숙한 것이죠. 옳은 게 아니고.    


‘미래 예측 노트’를 써보고 편견을 발견했어요.


학교에 유통되는 가치관에 누구나 예외 없이 물든다. 선생님은 역사, 미래 시간 개념에 관심이 있어서 ‘미래 예측 노트’를 썼었다. 저 학생은 10년 후엔 어떠하게 살 것이다 예측해서 적은 건데 시간이 흘러 확인해보니 완전히 틀렸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네가 뭐가 되려고 이러니?’하는 말은 아주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 우리 아버지가 나를 이상하게 예측했지만 나는 잘 살았듯이. 애들도 내가 예측한 것보다 더 잘 살더라고요. 아버지는 제게 “공부도 못해서 지방 교대 같은 데 갔으니 네 인생 꼬였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꽤 잘 살았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대견하게 살았던 거 같아요. 지금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나중에 안 되는 건 아니죠. 이를테면 제자 중에 영어를 못하고 너무 싫어하던 애가 있었는데 지금 영국에서 시민권 갖고 살아요. 꽤 괜찮은 셰프로 활동하고 있어요. 영국인 친구들도 많고. 저는 그때 제자가 영어를 너무 못하니까 영어로 일하는 건 못한다고 예측했을 거 아녜요? 예측이 틀린 거죠.

- 그럼 생애를 관통하는 능력은 뭐가 있을까 궁금하잖아요. 자아존중감이 중요해요. ‘그게 나야.’하는 거. 세상에 대한 긍정적 시야, 타자와 상호작용하는 능력도요. 이것이 기반이 되어야 교과 능력이나 다른 스킬이 빛을 발해요.    



우리나라 교육은 통통배, 항공모함이 되어야 한다.


- 야생화 텃밭이요? 전임 교장선생님이 했던 것을 이어서 한 거예요. 저는 관심이 없었는데 하다 보니 좋아졌어요. 안 할 수도 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할 때 사람이 발전되고 성장하는 것 같아요.     

이어 나가는 태도의 가치를 높게 생각했다. 새로 온 교장부터 다시 시작하면 애들이나 선생님들한테 많은 혼란을 줄 것 같았다. 나쁜 게 아니라면 진득하게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항공모함처럼. 우리나라 교육은 통통배다. 가다가 확 돌리고 확 돌리고. ‘새로운 게 좋은 거야.’ ‘내가 시작할 거야.’ 하면서.

학교가 세상 변화에 영향을 받지만 선생님의 교육적 권위는 시대를 관통하여 존중받아야 교육이 선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어떠하든 질서 속에서 보수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좋다. 너무 민감하게 변화에 앞서가려고 하는 건 엄청나게 어렵다. 한 발짝 떨어져 느리게 변화하면서 유연성 갖추기가 필요하다.   



'변화해야 합니다'란 말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스마트폰 변화하듯 학교가 전면적으로 바뀔 수는 없어요.


- 스마트폰 변화하듯이 학교가 전면적으로 바뀔 수는 없어요. 불가능한 일이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는 협력을 통해 스스로 과제를 발굴하고 1년에 15% 정도만 새로운 걸 해요. 애들은 변화무쌍한 것을 원하느냐? 그렇지 않아요. 애들은 작년 10월 1일에 운동회를 했으면 올해도 하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게 학교죠.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 간의 평화롭고 안전한 관계예요. ‘선생님의 교육적 권위, 함께 여는 미래’를 강조합니다. “선생님과 학생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정서적 안전판을 교장과 학부모가 같이 만들어 갑시다.”하죠. 정서적 안전판의 핵심은 ‘신뢰, 긍정, 협력.’입니다. 학생이든 선생님이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많은데 교장과 학부모는 거기에 대해 ‘그럴 수도 있어요.’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걸 합니다. 새로운 걸 강조한다고 새로운 걸 하는 게 아닙니다. 학교는 기업과 달라요. 기업은 살아남아야 해서 압박이나 그런 걸로 혁신을 하게 되는데, 학교는 지속 가능한 거, 평화로운 거, 안전한 거. 우리 학교는 그래서 변화라는 말이 별로 없어요. ‘변화해야 다.’란 말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합니다. 나는 괜찮고 네가 변해야 하고 사회가 변해야 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말이죠.


    


이천 년대 초반, 사람들이 대안학교에 눈길을 주고 찬사를 보내던 때

몇몇 교사들이 경기도 동남쪽 남한산성 산속에 있는

전교생이 27명밖에 안 되는 초등학교에 모였습니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부모가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동네 사람이면

누구나 올 수 있는 학교를 좋은 곳으로 가꾸어보자고 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우리를 눈여겨보지 않아.

하지만 십 년 뒤에는 세상이 우리를 주목할 거야.    

십 년 사이에 폐교가 되려던 학교는 학생 수가 여섯 배로 늘고

사람들이 떠나던 외로운 산속 동네는 이제 서울 사람들이

이사 오는 북적거리는 마을로 바뀌었습니다.

진보교육감 하면 떠오르는 혁신학교는 이 작은 학교가 출발점이었습니다.

그 학교 이름이 남한산초등학교입니다.    

(송승훈, 전국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모임 물꼬방 2014년 여름연수 자료집 서문에서 인용)    


혁신학교 교장이니 학교 변화를 향한 의지나 노하우를 들려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변화해야 합니다’라는 말은 삼성전자에서나 하는 거란 말을 듣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자료집 서문에 나온 작은 학교에 10년, 청년으로 들어가 중년이 될 때까지 청춘을 우려내어 변화를 일구었고 지금은 혁신학교 교장으로 살아가는 선생님에게서 나온 말이라 더욱 힘이 실렸다.     

오전에 학생들이 교장실에 놀러 오면 차를 대접한다는 선생님

그는 설명 끝에 ‘이를테면’을 붙여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좋게 예를 들어주는,

이야기꾼답게 직접 인용으로 흥미진진하게 말하는 사람.

경상도 말씨에 종결형만 서울말로 끝내 놓고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말에서 힘을 얻고 영향을 받아 밝아진,

가르치기보다 함께 수업에 참여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사막 횡단을 꿈꾸는 사람.

훤칠 하달 순 없는 키지만 다부진 체형에서

‘캐네디는 46세에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는데 나는 44세에 대한민국 교장 하나 못 하겠냐’ 생각하고

교장 공모에 응모했다며 그만의 스케일을 뿜어내는 사람.

황.영.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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