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로 첫 경험을 막 끝냈다.
본상담 1회기.(검사가 1회기에 들어가고, 초기상담으로 1회기. 총3회기에 해당한다. 검사를 하게 되면 회기가 후딱 지나가는 거 같다.)
하는 중에 음. 별루다 하는 느낌이 몇 번 들었다.
신기한 것은 집에선 분명 괜찮았는데 상담실 공간에서 말할 내용을 살짝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목이 멘다. (상담가의 말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고)
공간의 힘인가, 아직 풀리지 않고 내 안에 가라앉은 것이 있는 것인가
이야기의 마무리에서 당부가 있었는데
커피를 가급적 마시지 말라는 것. 카페인만 끊어도 신경증적 증상이 없어진다고 한다. (나 지금 이 글 쓰며 아인슈페너 먹는 중 ㅎㅎ)
나이아신을 먹으라고 한다. 비타민 B군이다. GNC에서 나온 500mg 고용량으로. 혈액순환도 잘 되고 뭐 여튼 약물치료 없이 우울증 치료할 때 좋다고.
내가 배운 한상담에선 공감을 아주 깊게 해준다. 여기는 게스탈트라고 하는데 상담사의 설명이 많다. 상담사가 자기개방을 하면서 나랑 같은 상황을 겪어 내 심정이 이해가 아주 잘 된다는 얘길 했다. 이해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이해받은 기분이 되는 것은 아닌데... 나는 내담자로선 이 상담자가 내 얘기를 들으면서 본인 상황에 비추어 내 얘길 듣는 거 아닌가 오히려 걱정이 됐다.
특징: 설명과 조언과(아빠의 요양원을 바꾸라고 단호하게 말해서 깜짝 놀랐다. 상담사가 이래도 되나 싶어서) 많은 간식, 그리고 마무리에서 눈감고 몸 중 어디에 힘들게 하는 것이 자리잡고 있는지 상상하도록 하는 거, 거기에 크기와 색과 냄새를 떠올리고 걔의 이름을 짓고 걔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으로 마치는 과정.(물량화, 명명화 작업이라고 한다)
기분: 나에게만 관심을 두는 시간, 날 도와주겠다고 하는 말, 이것에 나의 감정이 반응한다. 울컥. 감동인가?
한상담에서 내가 배웠던 것: 맞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책 찾기가 귀찮으니까 생각나는대로 한번 해본다면...
1) 나의 말을 아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얘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가장 힘든 감정이 드는 그 일을 털어놓는다......했다 치고
2) 가장 큰 감정 - 버겁다
3) 버겁다는 감정을 느끼게 한 생각은?
아빠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내가 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버겁다.
4)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내가 혼자 내리기 어려운 결정을 믿을 만한 누군가가 함께 내려주면 좋겠다. 그럼 덜 힘들게 느껴지고 든든해서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 같다.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은 일단 지나갔다. 다음에 또...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마 또 오겠지. 그때엔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너무 버겁고 힘드니까 결정을 내리는 데에 도와달라고 좀더 구체적으로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보면 좋겠다)
의사든 간호사든 엄마든 동생이든 남편이든 친구든 의논을 할 수는 있지만 결국 그때그때의 결정은 내가 하게 된다.(또는 그렇게 내가 인식한다) 그 결정에 따라 나는 차를 몰고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온다. 할 일을 했다는 안심감이 들기도 하지만 점점 좋아지기 보다는 돌봐드려야 할 영역이 늘어만 가는 게 힘에 겹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혼자 못 걷는 아빠의 상태, 살이 쪄야 하는데 몸에 좋다는 걸 구해다 드시게 해야 할텐데, 그걸 요양원에서 잘 챙겨줄까? 나는 꾸준히 챙겨 드릴 수 있을까? 약 부작용으로 변비가 심해지시는데 그럼 물을 많이 드셔야 하는데 수분을 많이 드실 수 있게 요양원 간호사와 의논을 해야겠구나 생각하면 전화하거나 상담앱에 글을 쓴다. 말을 정리해서 글을 쓰는 것도 일이다. 하면 되지 그냥 하면 되지.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가면 되지. 나는 왜 이리 버거워할까?
떠오르는 돌볼 목록이 너무 많게 여겨진다.
잇몸이 안 좋으시다. 음식을 드시면 잇몸에 많이 낀다. 전의 간호조무사는 치간칫솔로 음식물을 빼내 주었는데 바뀐 조무사에게 말했더니 아빠가 말을 잘 안 들으시고 거절하셔서 어렵다는 말을 한다. 나는 걱정이 쌓인다. 잇몸이 다 내려앉으셨던데 저번에 그래서 이도 하나 쑥 그냥 빠져버렸던데 그러다 아빠가 이가 흔들려 음식을 잘 못 씹으면 어쩌지...
살이 너무 없다. 살이 쪄야 기운도 나고, 걷고, 근육도 생기고, 움직여서 치매도 늦추고 선순환이 될텐데...반대가 되면 악순환이 되는데...
이것저것 떠오르면 해야 할 일이 생기고 그걸 하면 회복되어 정상의 건강한 상태가 되지는 못한다. 그냥 현상 유지, 더 나빠지지 않는 것. 그 상태를 위해 내가 계속 뭔가를 하는 게 하면서도 희망찬 느낌이 아니고 어둡고 우울하고 허망하고 슬프다.
하나하나 어려운 의학적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병원을 정하는 일- 의사를 정하는 일- 의사의 진단을 듣고 수술 결정을 하는 일이 그렇다.
그 뒤엔 따라오는 과정이 있다. 간병인을 구하는 일-간병인의 노고를 계속 알아주고 힘들다 힘들다 징징대는 걸 받아주고 알아주고 돈을 더 주겠다 하고 을의 입장이 되는 일, 병실 간호사를 상대하는 일(아빠가 병원에서 말을 안 듣고 치료를 힘들게 하는 일을 나에게 일일이 말한다. 나는 집에 있는데 어쩌라고 그러는가.)- 퇴원 후에 요양원에 회복을 위한 케어를 부탁하는 일(부탁은 하지만 모든 보호자들이 나처럼 부탁을 할텐데 그들도 일대일 간병인처럼 할 수는 없을 거라는 걸 안다. 아니까 미안하고 미안하면서도 부탁을 한다. 그나마 부탁한 것은 조금이라도 할테니, 하다가 말더라도 시늉이라도 할테니...하는 생각에서)-잘 지켜보고 필요한데 안 되는 부분을 짚어 해달라고 다시 부탁하는 일(허리 골절 이후엔 보호대를 바르게 3달간 착용하는 일이 매우 신경쓰여서 보호자들 보는 앱에 올려준 사진을 유의깊게 보았다)-아빠의 혈압과 부정맥을 살피는 일, 이 일들의 사이사이 직장과 가정의 일상을 유지하는 일.
아들이 방에서 나온다. 미역국에 들깨가루를 넣어 끓인 것을 먹고 싶다고 한다. 가장 쉬운 일이다. 쉬운 일은 많아도 하나씩 해치우면 된다. 어려운 일, 내가 감당하기 좀 난이도가 높다고 느끼는 일이 내게 올 때 나는 그럴 때 취약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