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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Jul 29. 2023

존엄한 마무리는 어떻게 하는 걸까?

    

2020년 친구랑 죽음의 준비에 관한 책을 읽었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쳐 우리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로 건강보험공단이 이 업무를 잠시 중단하면서 계획이 미뤄졌다가 2023.6.30. 드디어 역사적인 등록을!!!     


웹발신으로 


‘최가진 님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시스템(www.lst.go.kr)에 등록되었습니다’

라고 문자가 도착.

     

‘연명의료결정법은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생애말기 연명의료중단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미리 밝혀두면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여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돕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동네 지사에 방문하면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을 한 후, 컴퓨터 프로그램에 연락처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해 준다.      


연명의료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부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수혈, 체외생명유지술, 혈압상승제 투여 등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연명의료의 심폐소생술은 학교에서 교사들이 매해 실습으로 배워 급성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들을 소생하게 했던 심폐소생과는 다르다. 전문의가 ‘임종과정’, 즉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인데 심폐소생을 해도 살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나와 친구는 책에서 읽은 대로 가족이 내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죽음 대리인'을 정해서 부탁해 뒀다. 나의 대리인은 꾀꼬리, 친구의 대리인은 달덩이. 몇 살 차이 나지 않지만 동생이니까, 그리고 누구보다 우리의 의사를 잘 알고 있으니까. 부담스럽다는 반응에 뜻만 잘 전해주면 된다고 우격다짐으로 대리인을 해준다는 답을 들었다. 가족, 특히 자식의 경우 차마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말하기가 감정적으로도 어렵고, 자식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어렵게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의 시스템에 휩쓸려 의미 없이 돈을 쓰고 환자만 괴롭게 된다는 얘기가 많이 와닿았다.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는 게 평소 나의 의사임을 정확히 밝히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나의 대리인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작년 초 아빠가 응급실에 가서 중환자로 분류되고 패혈증이 심할 때 의사가 보호자로 앉아 있던 나에게 식구들을 부르라고 하고 연명의료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직계가족이 아닌 대리인은 이런 경우 당사자가 병원에 실려 온 것도 가족이 연락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데 대리인 지정이 얼마나 소용이 있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평소 가족이나 나랑 친한 주변 사람들과 자주 죽음을 맞는 나의 의사와 관련한 대화를 해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번에 방문한 건강보험관리공단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는 대리인을 등록하는 절차는 없었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잘 말을 해 뒀다. 아들은 순순히 알겠다고 답을 했는데 좀 더 커서 가족의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해야겠다. 모든 일은 마친 기분은 개운함.     


존엄한 죽음을 위해 더 중요한 건 '안락사' 허용이다.

배변을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나의 존엄은 바닥이라고 생각한다. 알츠하이머(치매라는 단어도 너무 치욕적이다)로 가족들이 힘들어지고, 병원이랑 비슷한 요양원 공간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나는 모르겠기에.     


이틀 후 아빠 생신이었다. 일주일 후에 병원 예약이 있으니까 그때 외출하신 김에 가족과 함께 생신 기념 점심을 먹기로 했다. 문제는 점심을 몇 시에 먹느냐였다. 병원에서 오래 기다리는 게 힘들어서 가장 이른 시간으로 예약을 했더니 볼일을 다 보고 나서 점심시간까지 1-2시간의 텀이 생겼다. 

엄마가 "어디 공원이나 시원한 곳에서 한 시간 정도 보내고 오면 안 될까?"

나 "그럼 되겠네, 경정공원에서"

엄마 "그런데 아빠 괜찮을까 소변이나 그런 거"

나 "기저귀 예비로 가져가야지"

엄마 "어디서 갈아"

......     

생각해 보니 난감해져 결국 병원 끝나는 대로 일찍 밥을 먹는 것으로 정했다.

내가 아빠라면?

나에 관한 일인데 나는 배제한 채로 이루어지는 걱정과 배려. 이게 계속되는 하루하루는 나의 존엄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괜히 눈물이 도르륵.

죽음은 삶과 맞닿아 있으니 닥쳐서 허둥대지 말고 살아있고 의식이 또렷할 때 찬찬히 잘 준비해서 맞이하고 싶고, 내 부모의 그날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스스로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린 남편의 이야기로 조력자살을 지원하는 스위스의 비영리기관에 동행하는 부부의 여정을 그린 책 ‘사랑을 담아’가 나와서 관심이 간다. 응급의학과 의사인 남궁인과 알랭드 보통 등 여럿이 추천사를 썼는데 읽으면 나의 죽음 준비는 형태를 더 분명히 갖춘 모습으로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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