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부 더디 쓰기
12월. 어김없이 생기부의 계절이 돌아와 있다, 이미.
19일을 마감으로 하여 지난주부터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겨울방학을 여유 있게 보내려면, 몽땅 생기부 쓰는데 다 써버리지 않으려면
12월의 마감을 잘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일요일의 일의 능률은 너무 형편없다.
학창 시절 시험 공부하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하고 싶은 다른 일이 너무나 많이 생겨나는 것처럼
싱어게인 3에 음색이 너무 좋은 49호 소수빈(벌써 이름을 알아버렸다)의 '넌 쉽게 말했지만'을 몇 번이나 반복해 듣다가 그의 음반도 찾아 들으며 노동요 삼고 있는데 노래 자체에 몰입해서 배경음악이 되지 않는다. 알고리즘으로 68호 양리진에게도 빠져들고 있다.
잠시 쉰다고 인스타를 켜면 독립서점과 이웃들이 올린 책 중에 읽고 싶은 것이 자꾸 추가된다. (일하다 쉴 땐 SNS를 하지 말아야 해 ) '아무튼, 남고'도 재밌겠고, '스타벅스 일기'도 유머스러운 문체가 눈길이 간다.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만 둔다. 의자 뒤 책꽂이에 방학에 읽으려고 야금야금 꽂아둔 책이 열여섯 권이 있다.
역시 잠시 쉰다고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다가 자꾸 나오는 '김릿'을 검색한다. 생기부 끝내는 날 기념으로 마셔줘야겠군. 소설가의 칵테일이라는데?
식사가 자꾸 부실해져서 사다둔 계란을 밥솥에 구웠다. 겨울 물꼬방 모임 기획단에서 열차표를 예매하라는 연락이 와서 창을 열어 SRT를 예매했다.
아, 이거 하다 저거 하다 언제 다 쓰냐
하루키가 예술하는 사람은 일상의 일들을 대신해주는 노예가 있어야 한다더니만
나도 일요일에 일하다 보면 밥하고 분리수거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이 그렇게 번거로울 수가 없다.
생기부는 아이들의 한해살이를 기록하는 역사다. 이걸 대학에 써먹느냐 그러지 않느냐와는 별개로 잘 갈무리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진도는 더디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