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진 동그라미의 삶
나는 점점 무뎌졌고, 그게 나를 살렸다.
내 머리 안에는 늘 커다란 서랍이 하나 존재한다.
어느 칸을 열면 어느 날의 기억이,
그 아랫칸을 열면 또 다른 날의 기억이,
무수한 칸을 가진 커다란 서랍 속에는
잊을 수 없는 기록된 기억들이 빼곡하다.
몇 살인지도 모를 아주 오래된 기억이 보관된 서랍을 열면
이리저리 각진 내가 보인다.
안과 밖 그 어디도 각이다.
나를 찌르는 각들과
밖을 찌르는 각들로 이루어진 사람
내게 찔린 사람
내가 찌른 사람
나를 찌른 사람
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많은 것은 '나를 찌른 나'였다.
늘 만족할 수 없는 내 모습
내가 만들어둔 완벽함이라는 결승선에는
한 번도 도달할 수 없었으며
도달하지 못할 때마다 나는 나를 무수히 찔렀다.
이기지 못할 트라우마 앞에서
내가 만들어둔 안전장치는 나를 지키다가도 나를 찔렀고,
내 앞에 펼쳐졌었던 무수한 일들이
모든 게 내 탓인 마냥 나를 찔렀다.
찔리다 못해 죽을 것 같은 날을 여럿 넘기고서
이제와 나는 각진 동그라미가 되었다.
내 각들은 수십 년이 지나 무뎌졌고
나는 겨우 살았다.
앞으로 몇 번의 찔림이 남았을지 모르며,
그 각이 얼마나 날카로울지 아무도 모르며,
그 찔림의 고통이 너무나 두렵다.
그래서 무뎌져야 한다.
무뎌짐 속에서 생겨난 굳은살로 버틸 수 있고 숨이라도 붙일 수 있다.
다시 아주 오래된 서랍을 닫는다.
이리저리 각진 내가 담긴 서랍을 조심스럽게 닫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