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줄, 992번 서랍
네 번째 줄, 992번 서랍을 열다.
사실 이 기억이 네 번째 줄의 992번 서랍인지도 잘 모르지만
다만 나이, 옷차림, 계절등을 보아 992번 즈음일 것이다.
그 해 나는 아주 어렸다.
아마 며칠 잠시 할머니댁에 맡겨진 듯했는데, 민소매를 입고 무더웠다.
아주 어렸던 나는 제법 고집 있는 아이였다.
커서 보니, 그건 유전된 특색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집엔 고집 없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일찍 결혼해 나를 낳은 엄마 아버지 덕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비교적 젊은 연세셨다.
할아버지의 특기는 짜장면에 든 완두콩을 젓가락으로 집어 젓가락 위에 한 줄로 줄 세우기였는데,
(글로 설명하려니 어설프다. 완두콩 기차라고 상상해 보자..)
그날은 내가 완두콩에 대한 강한 고집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고집인지는 모르겠다만 완두콩과 관련된 작은 고집이었을 것 그 작은 고집을 시작해
나는 울음이 터졌고, 울음이 터지자마자 할아버지의 손바닥이 내 뺨을 후려쳤다.
장난스러운 터치가 아닌 내 고개가 돌아갈 만큼
이 기억이 담긴 서랍은 한참 닫혀있다 내가 10대가 되었을 무렵 다시 열리게 된다.
원래 강렬한 기억은 꿈에서도 등장한다고 했던가.
오래 잊혀있다 꿈으로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설마, 혹시 그냥 악몽이겠거니 웃으며 얘기한 꿈의 내용은 정말이었다.
할머니가 듣더니 그렇게 세게 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세게 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세게 때리지 않았다고 했다.
뭐라 할 말도 없었다.
그냥 그 말을 되새겼다.
나를 때린 할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보았고, 그게 다였다.
맞았던 아픔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아픔은 다른 형태로 찾아왔다.
그 말을 끝으로 이 기억은 다시 서랍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은 사과가 없는 집이다.
미안하다던지 하물며 가볍게 전하는 쏘리 마저 없는 집
사과를 전해야 할 타이밍엔 늘 더 큰 소리가 오가던 집
그렇게 나는 조부모님과 한발 멀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