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각진 사람

기억의 서랍을 열다.

by 각진 동그라미

내 머리 안에는 늘 커다란 서랍이 하나 존재한다. 어느 칸을 열면 어느 날의 기억이, 그 아래칸을 열면 또 다른 날의 기억이, 무수한 칸을 가진 커다란 서랍 속에는 잊을 수 없는 기록된 기억들이 빼곡하다. 몇 살인지도 모를 아주 오래된 기억이 보관된 서랍을 열면 이리저리 각진 내가 보인다. 안과 밖 그 어디도 각이다. 나를 찌르는 각들과 밖을 찌르는 각들로 이루어진 사람.


내게 찔린 사람, 내가 찌른 사람, 나를 찌른 사람, 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많은 것은 '나를 찌른 나'였다. 늘 만족할 수 없는 내 모습. 내가 만들어둔 완벽함이라는 결승선에는 한 번도 도달할 수 없었으며 도달하지 못할 때마다 나는 나를 무수히 찔렀다. 이기지 못할 트라우마 앞에서 내가 만들어둔 안전장치는 나를 지키다가도 나를 찔렀고, 내 앞에 펼쳐졌었던 무수한 일들이 모든 게 내 탓인 마냥 나를 찔렀다. 찔리다 못해 죽을 것 같은 날을 여럿 넘기고서 이제와 나는 각진 동그라미가 되었다.


내 각들은 수십 년이 지나 무뎌졌고 나는 겨우 살았다. 앞으로 몇 번의 찔림이 남았을지 모르며, 그 각이 얼마나 날카로울지 아무도 모르며, 그 찔림의 고통이 너무나 두렵다. 그래서 무뎌져야 한다. 무뎌짐 속에서 생겨난 굳은살로 버틸 수 있고 숨이라도 붙일 수 있다. 다시 아주 오래된 서랍을 닫는다. 이리저리 각진 내가 담긴 서랍을 조심스럽게 닫아둔다.



모든 이야기는 기억의 서랍에서부터 꺼내져 글로 옮겨진다.

8세까지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각진 내가 된 계기어떤 사람으로 자라게 됐는지 풀어보려 한다.





최초의 반항과 나를 찌르는 후회 일곱 번째 줄, 2223번 서랍

이 날의 전날은 부모님이 심하게 다툰 날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힘없이 작은 방에 하루 종일 누워있었으니까.

나와 동생은 장난감으로 한참 놀았는데, 내 몫은 정리를 마쳤고 마침 들어온 아버지가 집을 치우라며 소리를 질렀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무섭게 느껴져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한 나였지만, 이상하게 그날은 화가 났다.


내가 어지른 구역이 아니며, 여기 널브러진 장난감은 동생이 쓴 거니 나는 치우지 않겠다고 소리를 빽 질렀고 내 기억상 처음 소리를 지르며 반항한 날이었는데 그때 당황한 아버지의 표정이 아직 생각난다. 그러고선 누워있는 엄마한테 다가가 내가 한 게 아닌데 왜 치워야 하냐며 울었다. 그때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결국 아버지가 두려워 마저 방을 치웠다. 방을 치우며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 엄마에게 무어라 소리치며 화내는 목소리 그 목소리들을 들으며 그냥 제깍 치울 걸 하며 후회했다. 이 후회는 몇 년씩이나 나를 찔렀다.


아버지의 다마스가 낳은 조각 일곱 번째 줄, 2292번 서랍

'다마스'라는 차를 아는가. 밋밋한 미니 봉고처럼 생긴, 언젠가 에어컨 수리나 방충망 수리 또는 세탁물을 취급하는 차를 여럿 보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차는 아반떼였다가 다마스였다가 여러 차로 바뀌곤 했다. 겨울 무렵, 짧은 해가 지고 캄캄한 밤에 나와 내 동생은 아버지 손에 짐짝처럼 붙들려 다마스 뒷 자석에 실렸다.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나와 내 동생은 지금 나가자며 맨발로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정사각형 창문이 여러 개 달린 중문의 유리창은 박살 나있었고 집은 이미 엉망이었으며 싱크대 앞에서 흰색 패딩을 입은 엄마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웅크린 엄마를 발로 차고 있었다.


내 머리는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다마스에서 뛰쳐나온 순간부터 집에 들어 선 순간까지 본능은 오직 '엄마'를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엄마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 사이 뒤를 돌아보는 아버지와 아슬아슬하게 아버지를 피해 따라 들어온 동생. 중문의 몇 장 남지 않았던 온전한 유리창마저 박살이 나고, 몇 분인지 몇 초인지 모를 그 하얗게 질린 시간을 지나 아버지는 집을 떠났다.


박살 난 유리창처럼 나는 산산이 조각 나 세상에서 가장 각진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가 만든 조각 같은 나, 각진 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두 번 다시 다마스를 타지 않는다.






아버지가 그렇게 떠나고, 다시 언제 돌아왔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여덟 살이 되는 해, 새 집으로 이사 갈 무렵 돌아와 있었다. 이사 전까지는 여럿 일들이 있었다. 엄마의 하나뿐인 직계 가족인 외삼촌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삼촌의 목숨값으로 우리 남매를 키울 집을 샀다. 엄마에겐 그 집이 단순한 집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릴 땐 그저 내 방이 생겨서 좋았고, 어딘가 마음 한편에 여전히 두려움으로 남은 아버지가 돌아온 사실이 이상할 만큼이나 좋았다.


어설프고도 온전한 가족이 된 순간, 그 아슬아슬한 따뜻함이 나를 덮어주었고, 각진 나는 잠시 모습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온전함은 한순간이었다. 늘 그랬듯, 큰 소리와 싸움이 오가는 전쟁터 같은 집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닌 매가 된다. 여덟 번째 줄, 2389번 서랍

초등학교 입학 후, 새 교과서와 시간표를 받고 처음으로 책가방을 챙기던 날 '음악' 시간에 챙겨야 할 '음악'책이 없었다. 원래도 물건 찾기는 정말 못하는 어린이라 엄마를 불러다 물었고, 그 뒤로 머리통을 여럿 맞았다. 몰랐기 때문이다. ‘음악’이라는 과목이 ‘즐거운 생활’이라는 이름의 교과서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교과서를 그렇게 들여다봤는데 그게 '음악' 과목인지는 몰랐다. 내 인생 첫 초등학교였고,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모든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초등학교 입학은 한 번이고 그건 처음일 것이다. (혹시라도 편견이라면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처음 한 대는 당황, 그 뒤로부터는 공포였고, 수치였다. 몰라서 맞았다는 수치였다. 나는 물음이 적었다. 더 어렸을 적엔 이것저것 묻기도 했겠지만, 언제부터 물음을 삼키기 시작했다. 왜 나를 때리는지 그게 어떤 이유인지, 왜 엄마와 아버지가 그렇게 싸우는지, 왜 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지, 왜 서로는 사과하지 않는지 따위를 물으면 영영 나를 어딘가 버리고 올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음악책이 무엇이냐 묻는 우스운 질문에도 매질을 하니 우습지 않은 질문에는 내 두려움이 공포적인 현실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두려웠어도 그때 알았어야 했다. 더 늦은 현실에 모든 걸 알게 된 순간에는 두려움이 공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분노가 되고 증오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혀 살아가던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