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줄, 2949-2954번 서랍
[가정폭력 주제를 포함한 내용으로 인해 심리적 불편함이 있을 수 있으니 신중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세탁기만 빼고, 나는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웬만한 살림은 다 할 줄 알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는 내게 가스불을 켜는 법, 계란프라이를 굽는 법, 설거지와 밥솥에 밥을 하는 법, 청소기 돌리는 요령 등을 알려주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마냥 좋았다. 엄마가 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가스불은 켜고 나면 꼭 밸브를 잠가야 한다,
계란프라이는 기름을 적당히 두르고 껍질이 들어가면 빼내야 한다,
설거지는 뽀득뽀득 소리 나게 끝나면 싱크대를 정리하고 물기를 닦아야 한다,
쌀 컵 수에 따라 물을 안에 표시된 부분까지 맞춰서 넣고 쌀은 세 번 정도 박박 씻을 것,
청소기는 뒤에서 먼지바람이 나오니 환기를 꼭 시켜서 해야 한다.
또 뭐였더라 하여튼 뭔가 배운 게 많았다. 왜 알려주는지는 몰랐다. 그냥 재밌었다.
계란이 하얗게 익어가는 것도,
설거지할 때 접시에 뽀드득 소리가 나는 게 재밌었고,
쌀을 씻으며 쌀알이 흘러가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야 하는 게 하나의 미션 같고,
청소기 버튼을 누르면 코드가 휘리릭 감겨 들어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마냥 재밌기만 한 일을 왜 알려줬는지까지 알려줬다면, 내가 엄마를 조금 덜 원망했을까.
그저 즐거운 ‘엄마 놀이’를 이어가던 내게는 앞으로 닥칠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날 밤, 엄마는 외출을 하고서 어째서인지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제일 안쪽 방에서 컴퓨터를 하던 아버지는 종종 큰소리로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지레 겁먹은 나는 일찍이 잠에 들었다.
월요일 아침, 평일에는 알람 없이도 7시에 알아서 눈을 떴는데 그때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그리고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사람이 박살 나는 소리인지, 가구가 박살 나는 소리인지 비명도 들리고 고함도 들리고 두려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원래 두려움을 느끼면 꽥 소리 한 번을 못 지르고 입을 앙 다무는 스타일이다. 입에 돌이 여럿 든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동생을 깨워 아침을 차렸다.
학교를 가야 했으니까 단지 그 이유로 아침을 차렸다. '저 방은 아무 소리도 안나는 방이다.' 속으로 번번이 되새기며 동생과 김에 밥을 먹는다. 동생도 두려운지 안방 문 앞을 기웃거렸다가, 밥을 먹었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했다. 누군가 죽을 것 같은 비명이 들리고서야 동생이 벌떡 일어나 안방 창문과 연결된 베란다로 향했다가 뛰어들어왔다. "누나 엄마 죽으면 어떡해?"라는 말을 하고서 문을 빤히 바라봤다. 이윽고 방에서 아버지만 나와 학교 안 가냐며 소리쳤다.
등교 준비를 하는 중에도 동생은 연신 "엄마 괜찮을까?"라고 물었고, 그 물음조차 두려웠던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굣길은 더욱 공포였다. '엄마가 죽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나를 너무 괴롭게 했다. 엄마는 나한테 전부였다. 내 세상에 전부였다. 엄마가 없는 건 상상해 본 적 없고 상상할 수 없었다.
도착한 집에는 예전에 같은 빌라에 살던 윗집 이모가 와 있었다. 엄마는 내 방 침대에 누워있었고, 엄마 얼굴에는 커다란 멍이 들어있었다. 커다란 멍.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한참이나 지나서 겨우 한 말은 "엄마, 자?"였다. 엄마는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모는 엄마한테 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곤 집을 나갔다. 송장처럼 누운 엄마와 나 사이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땐 눈물도 안 나왔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한참의 적막 뒤에 엄마는.. "동생이랑 아이스크림 사 먹고 와"라는 평범한 말을 했다.
말할 수 있었구나 다행이다. 아무 일 없었던 거네 괜찮은 거네
비집고 나오는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막 들어서는 동생과 슈퍼를 향했다.
동생과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는 길에는 서울에 계신 할아버지가 길 한복판에 우뚝 서 있었다. 갑작스럽게 보니 다른 사람 같았다. 집 안 어른이 오셨으니 모든 게 정리될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는 문방구에 파는 3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각자 하나씩 집어 들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간 집은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아침엔 죽는소리가 나던 방이 지금은 심각한 분위기가 되어, 언제 왔는지 모를 아버지까지 엄마와 할아버지 셋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비교적 안방과 가까운 내 방에서 동생과 둘이 마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무언가 들어보려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내 귀엔 많은 말들이 들렸다.
'위자료 3,000만 원', '아버지가 빌려주세요.', '나 그런 돈 없다' 등등 위자료가 뭘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됐다. 드라마에서 늘 듣던 말이니, 이혼을 앞둔 막장 부부가 위자료 싸움하는 것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심장이 쿵 떨어져 멎은 것 같았다. 이제 우리 가족은 없는 걸까.
뒤늦게 우리 존재를 알기라도 한 듯, 문은 닫혔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 없는 방이 되었다. 저 방에선 티브이소리도 나고, 엄마랑 아버지가 서로에게 종종 장난을 치던 소리도 들렸고, 뛰지 말라고 소리치던 소리도, 이불 정리하라는 소리도 들렸던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적막할 수 있는지.
작은 개미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그냥 화해한 거 아닐까, 할아버지가 뭐라고 아버지를 다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어느새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는 서울로 다시 올라가셨다. 어른이 없으니 다시 두려웠다가도 또다시 집을 나서는 아버지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목요일이 될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 동안 엄마는 "아빠가 집에 오면 엄마는 잠깐 절에 다녀올 거야 절이 바빠서 도와달라고 하네"라며 "엄마가 없을 땐 누나인 네가 동생을 봐야 해"라는 뻔한 플래그 같은 말을 했다. 절은 엄마의 유일한 친척인 큰 집에서 운영하는 절이었고 나도 자주 갔으니 당연히 갔다가 돌아오는 줄 알았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목요일 저녁 여느 때처럼 셋이서 밥을 먹고, 엄마는 커다란 가방에 옷을 챙겼다. 이윽고 아버지가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엄마 몸만 한 요란한 하트가 그려진 짐 가방을 들고서 내게 말했다. "엄마가 없을 땐 뭐라고 했지? 네가 엄마야 동생 잘 챙겨야 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엄마는 떠났다.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다 소파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제 엄마 집에 안 온다. 그렇게 알아라"
아버지의 말은 나를 죽였다. 나를 아주 갈기갈기 찢여 죽여버렸다.
내가 멍하니 있는 동안 동생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티브이 소리만이 집을 떠돌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 동생은 집전화기에 부재중이 떠 있다며 내게 들이밀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익숙한 엄마 전화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보같이 "엄마, 모르는 사람한테 전화 왔었는데 누군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뱉었다. 엄마 어디 있냐고 나도 데려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이 나오면 나도 소리 없는 방에서, 아버지가 죽여버리지 않을까.
엄마가 없는 다음날은 더 끔찍했다. 왜 내가 살림을 일찍 살게 됐는지 알게 되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청소기를 돌리고 부지런히 설거지를 했다. 어젯밤 엄마가 마지막으로 널어둔 빨래는, 마른 건지 안 마른 건지 알 수가 없어서 한참을 매만지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누군가와 집에 들어섰다.
그를 따라 들어온 낯선 여자는 아버지 옆에 섰다. 모르는 여자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이 수건이 마른 건지, 안 마른 건지 모르겠어", "마른 것 같은데 왜 안 마른 것 같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니 아버지는 그런 건 안 해도 된다며 동생을 데리러 나가자고 했다. 동생을 데리러 가는 차 안, 동생의 태권도장은 바로 집 앞인데 왜 차를 타지? 의아한 맘으로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이제 엄마라고 불러라"
아버지의 더럽고 치졸스러운 말이었다. 엄마가 있는데 왜 모르는 여자에게 엄마라고 부르라 하지. 조수석에 앉은 여자는 나를 돌아보며 "잘 부탁해"라는 더 이상한 말을 했다. 생판 모르는 남이 갑자기 내 엄마가 될 수 있나? 아버지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맞는 걸까? 이게 내가 여태껏 배워 온 효도와 예의에 어긋나는 걸까? 엄마라고 부르지 않으면 나도 죽일 것처럼 때릴까? 나는 아는 욕이 없어서 욕을 할 수도 없었다.
차에 탑승한 동생에게도 하는 말은 똑같았다. 동생은 곧잘 그 여자를 "엄마"라고 불렀다. 이런 걸 동생이라고 나한테 챙기라고 한 걸까 우리 엄마는? 아버지만큼이나 엄마도 미웠고 싫었다. 다 싫었다.
나를 영영 버린 엄마도,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 저 여자도, 더러운 아버지도.
당신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각진 모서리로 언젠가는 당신을 부수리라 다짐했다.
새엄마요?
내게는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운 '새엄마'라는 단어. 주변 천지를 돌아보아도 9살 어린이의 또래에겐 이혼가정도 드물었고, 더군다나 새엄마를 가진 집조차 없었다. 물론 집집마다 사정은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당시의 내 주변에는 없었다. 지옥 같은 곳에서 지옥보다 더 낯선 사람이 생겼다. 계모처럼 나와 동생을 구박하거나, 손찌검 한 번 없었지만, 존재만으로도 최악이었다. 우리 엄마 자리를 갈아치운 사람. 그저, 상간녀에 불과했고, 아버지는 볼 것도 없이 그날 이후 나에겐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어른도, 부모도 아니었다.
분통이 터진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밤마다 매일 울었다.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신분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새엄마는 시작일 뿐, 그 뒤로도 엄마 집에서 신혼 행세를 하던 이들은 이윽고 멀지 않은 곳에 신혼집을 차렸다.
그 신혼집에는 나와 동생, 그리고 '새언니' 마저 존재하게 되었다. 나와는 한 살 터울이던 그 여자의 딸이었다. 이제는 생판 모르는 이가 내 친언니가 됐다. 심지어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그 애도 밤마다 친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 그 마음만큼은 나와 너무 닮아있었다. 엄마인척 행동하는 그녀는 내게 '남편은 아파서 생을 달리했으며, 그러다 아버지를 만나게 됐다'라고 설명했으나 그녀의 딸은 말이 달랐다. 친아버지는 아프기는커녕 그저 하루아침에 새아버지가 생겼다 말했다.
가만히 살아 숨 쉬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다니. 대단한 여자다. 그녀의 대단한 행보는 내게 가히 함부로 굴어선 안 되는 인물이 되었다. 혹여나 나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두고 '둘째 딸은 생을 달리했어요.'라고 눈 하나 깜짝 않고 말할 수 있었을 테니.
아버지는 세상 가정적인 사람인 양 굴었다. 이런 면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역시 두 집 살림 경력직은 남달랐다. 어딘가 다정하고 성실한 척을 했다. 본인은 좋은 아버지 가면을 쓰고, 내 얼굴에는 어떤 표정이 씌워진지도 모르는 채, 본인만의 행복한 가정에서 화목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결국엔 아주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내 안을 매 순간 찔렀다. 원망과 증오, 분노는 밖을 향하지 못하고 나를 야금야금 뜯어먹었다. 뜯어 먹힌 자국은 또다시 내게 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