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기와 재앙

열일곱 번째 줄 5677-5859번 서랍

by 각진 동그라미

열일곱 살이 되던 해, 나는 고등학교로 입학하게 되면서 그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물론 같은 학교에 옆반이던 친구들도 있었고, 학교가 달라졌다고 해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기에 자주 만날 순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덮개처럼 얹혀있던 기억들이 점차 멀어지며 그 아래에 숨겨진 재앙이 고개를 들었다.


잠복기 동안 내가 그 애와 겪었던 일들은 마치 꿈처럼 느껴졌고, 가끔은 그게 처음부터 없었던 일 마냥 지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재앙을 마주하게 된 순간, 그 일들은 어제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고 극도의 두려움을 먼저 느끼게 되었다. 내가 사는 동안 언제든 그 애를 마주칠 수 있다는, 그리고 마주치면 이번에는 끝나지 않을 지옥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눈 떠있는 동안에는 두려움이, 잠든 동안에는 티브이 재방송처럼 그 애와 보낸 시간을 다시 겪어야 했다. 항상 꿈에서 깨어났어도 발 밑으로 현실이 무너지는 느낌,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숨 막히는 고통이 찾아왔다. 그 후에는 대체로 빈 속을 게워냈다. 이 증상이 ‘공황 상태’의 일종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 알게 됐지만, 내 상황을 어디에 알리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이 어딘가 자꾸 위축되었고 스스로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잠을 자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뜬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다 지쳐 잠드는 일이 많아졌다. 잠은 적게 자는데, 혹시라도 아침에 이상한 상태인 나를 마주할 가족이 있을까 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남몰래 정신을 차린 뒤, 학교로 향하곤 했다. ‘걔가 나를 지켜보고 있진 않을까’, ‘내가 혹시 숨 쉬지 못해 길에서 쓰러져버리면 어쩌지’, ‘이런 이상한 모습을 남들이 보면 어쩌지’ 하는 마음들은 자꾸만 나를 뒤돌아보게, 어디든 편하게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늘 피곤했고, 피곤함에 예민함도 함께 커져만 갔다. 옆 자리 친구가 손톱을 물어뜯는 아주 작은 소리, 집 안 어디선가 울리는 작은 기계음, 부스럭거리는 비닐 소리, 내 뒤에서 들리는 걸음 소리 같은, 평소에는 들리지도 않던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예민함은 내 안에서 자라는 선인장 마냥 온 신경을 긁고 찔렀다.


그렇게 얼마나 지냈는지 모를 무렵, 책상 위에는 ‘자살’과 관련된 설문조사지가 올라왔다. 나는 모든 것에 부정적인 체크를 연신 해댔다. 정말 미쳐버리기 직전이었으므로. 편하게 잠들고 싶었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재앙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한 때 연민으로 죽음으로써 나를 놓아주고팠던 마음은, 고통에 지쳐버린 마음으로 변질 돼 나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재앙은 설문조사지에도 어김없이 묻어났다. 나는 교내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담임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의 면담도 맞이해야 했다. 결국은 엄마가 학교에 오게 되었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서 엄마를 부르는 일은 없도록 하길 바랐다. 혹여 교내에서 사고를 치더라도, ‘부모님 호출’ 따위의 일까진 벌이진 말라는 뜻이었다. 학교에서 마주친 엄마는 보기 좋은 미소로 나를 맞이했지만, 나는 그 애를 마주치는 것보다 더 큰 공포를 느꼈다.


모든 학교에 배치되는 학생 상담처 ‘위클래스’에서는 좋은 정신과병원을 소개해주겠다 했다. 내가 대부분의 질문에는 일절 침묵으로 대변했으며, ‘그냥요.’ 또는 ‘모르겠어요.’ 말만 반복했던 결과였다. 지금은 정신과를 방문하는 일이, 감기에 걸려 내과에 가는 것처럼 인식이 많이 바뀐 상태지만, 그 당시에는 달랐다. 어디에서도 쉬쉬했어야 했다. 집안의 수치 같은. 정신병이란 늘 부정적인 요소였다.


엄마가 학교에 다녀간 그날, 엄마는 나를 몰아세우며 부끄럽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며, 혹 이미 오래된 옛날 일 때문이냐며 나를 윽박 지렸다. 엄마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 정신과에 가겠냐는 말에 별 수 없었던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아버지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나를 피한다는 느낌은 언뜻 들었다. 그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없었으므로.


택시를 타고 방문한 정신병원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우뚝 서있었다. 폐쇄 병동을 함께 운영하는 꽤나 큰 규모의 병원이었다. 자동문을 지나 들어서면 마치 ‘지린내’ 같은 기분 나쁜 약냄새가 풍기는, 소음이라곤 접수 데스크의 대화소리가 전부인 곳.


첫 진료는 다양한 검사를 했던 것 같다. 의사는 이렇다 저렇다 할 개인적인 질문 없이, 잠은 자는지, 평소에 얼마나 자주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지 정도만 물었다. 보호자인 엄마를 불러, ‘우울증’에 대한 입원 치료가 가장 적합해 보이고, 그게 아니면 통원과 약물 치료가 어떻겠냐 물었다.


입원을 하게 되면, 학업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는 의사와 엄마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들르는 것으로 치료가 확정되었다. 처음 보는 엄청난 양의 약 뭉치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약의 효과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늘 그랬듯 천장을 바라보며 뜬 눈으로 지낸 밤의 길이가 아주 약간 짧아지긴 했으나, 이게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다는 건지 잘 몰랐다. 그래서 그다음 주에는 약의 전체적인 강도를 더 올려 처방받았다. 약을 먹기 전과 후로 내가 느끼는 큰 차이는 없었지만 대개 멍해졌다던지, 머릿속이 텅 비어져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매주 병원을 방문하기는 했으나, 늘 같은 질문에 의미 없는 약처방만 반복됐다.


약을 먹지 않은 날이면, 생각은 끝없이 깊어졌다. 그러다 눈감으면 이 세상이 끝나길 바라면서 가족들이 집을 비우는 날에 여러 봉지의 약을 한 번에 삼키고, 그대로 잠에 빠졌다. 언제 잠에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다시 눈 뜬 순간은 절망 그 자체였다. 이 정도 약으로는 절대 죽음에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과 대신 아무 꿈도 꾸지 않고 일어나게 된다는 것만 알게 됐을 뿐이었다.


그 뒤로도 빈 집이 되는 날에는 약을 털어 먹었지만, 늘 기적처럼 눈을 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사도 이런 일을 예상하고 약을 처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약에 대한 집착만 점점 커져갈 때 즈음, 큰 동생이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돌아왔다.


거실로 불려 나간 나와 동생은 엄마, 아버지를 마주 보고 앉았다. 아버지는 도대체 본인이 우리에게 못해준 게 무엇이 있는지, 본인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다그치기 시작했고, 이윽고 동생을 매질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뜯어말리는 모습과, 동생의 울부짖는 소리, 마침내는 동생의 뒷덜미를 잡아 같이 죽자며 발코니로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까지 그 모든 게 나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여태껏 엄마나 아버지에게 대들어 본 적도 없으며, 반항이라고는 ‘몰라’라는 대답을 하는 게 다였는데, 그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다 못해, 귀와 입, 눈, 코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입 밖으로 터져 나온 분노는 고함이 됐고, 연신 아버지를 잡아 뜯었으며, ‘나도 같이 죽여버리지’하는 말들을 내뱉고서는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내 방 침대에서 울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울음을 멈춰야 할지, 지금 내가 깨있는 상태인지, 꿈 속인지 조차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엄마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엄마는 내 어깨를 움켜잡고 진정하라고 말했지만, 눈물에 가려져 엄마의 표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 방이 점점 캄캄해져 갔다. ‘아버지가동생을아직도때리고있는것같아새엄마가웃고있을것같아이러는나를엄마가싫어할것같아나를버릴것같아대문밖에그애가서있을것같아숨을어떻게쉬더라이러다죽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수도 없이 드나드는 중이었다.


“너 자꾸 이러면, 병원에 입원시킬 거야.”


엄마의 분명하고 선명한 목소리가 나를 내려쳤다. 내려쳐짐과 동시에 머릿속에 있던 모든 기억과, 물음, 그리고 엄마가 내뱉은 말까지 마치 굴러가는 두루마리 휴지처럼 앞다투어 펼쳐졌다. 죽을 것 같은 심정 속에 엄마의 말만 붉은 띠처럼 내 앞으로 흘러갔다. 지금 저 말을 잡지 않으면, 영원히 버려질 것 같았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엄마가 나를 버릴 거야’라는 생각은, 엄마의 붉은말을 붙잡게 했다. 그 말은 나를 너무 아프게 했지만, 곧 제정신으로 돌아오게도 했다. 정신 차린 두 눈으로 들여다본 엄마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무서웠다.


“적당히 좀 해”


엄마는 짧은 말만 남기고 내 방을 나갔다. 여전했다. 내 아픔은 끝까지 고려해주지 않는다. ‘아프다.’,’ 힘들다.’라는 말 없이도 거절당했다. 이런 내 모습은 그저 거절당하는 모습이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눈물도 더 이상 나지 않았으며, 몸 안의 피가 온통 빠지는 느낌이었다. ‘죽음’에 대해 잔잔히 생각해 보았다. 죽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데 굳이 애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꿈에서는 늘 그랬듯 그 애가 나와 나를 괴롭혔고, 다시 아홉 살의 내가, 그러다 다시 다마스를 탄 내가 되었다가, 많은 내가 되고서야 잠에서 깼다. 식은땀에 절여진, 마치 물속에서 방금 잡힌 물고기처럼 헐떡거리다 엄마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너 자꾸 이러면, 병원에 입원시킬 거야.’ 그 말을 두려워하다 보니. 정신을 차리게 됐다.


그 말은 ‘공황’ 스위치가 켜지면, 늘 떠올릴 말이 되었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죽는 게 나을 것만 같은 말을 기억해 낼 때, 스위치는 천천히 꺼졌다. 그날 이후, 나는 죽음에 대한 의지를 잃음과 동시에 스위치를 끄는 법을 알게 됐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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