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자물쇠 그리고 덮개

열다섯 번째부터 열여섯 번째 줄, 5009-5616번 서랍

by 각진 동그라미

5009-5311번 서랍


5009번째 서랍부터 5311번 서랍은 한 때, 여닫이 없이 뻥 뚫린 채로 세세한 기억을 보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열쇠가 없는 자물쇠를 걸어 잠근 상태다. 잊히지도 않고 지울 수도 없다. 그저 굳게 닫아두었다. 그렇게 잠긴 서랍은 아주 먼 길 뒤에 세워 뒀다. 그 서랍으로 가는 길은 내 안의 지뢰를 밟아가며 가야 하는, 힘겨운 길이다.


그곳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기억들이 들어있다. 이때의 나는 망신창이었다. 누군가 나를 죽기 직전까지 괴롭혔으며, 나는 매일 괴롭힘을 견뎌내야 했다. 매일 눈을 뜨는 게 고통이었다. 아직도 모든 게 선명하게, 마치 어제인 것처럼 기억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내가 좋다고, 사랑한다고 하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됐다. 그건 독이 되었다. 독 이상의 무언가였다. 그 애가 주던 사랑은 때론 주먹이 됐다가, 검은 봉지와 욕조 그리고 커터칼도 됐다. 자세히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몇 단어로 쓰는 와중에도 몇 번을 두리번거렸는지 모르겠다.


주변에 어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에 대한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협박의 매개체가 됐다. 10개월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누군가의 장난감이 되어 고통스럽게 보냈다.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말이 딱이었다. 괴롭혀지는 고통보다 죽지 못한다는 고통이 더 커질 때 즈음, 나는 미쳐버렸고 우습게도 그 애는 미친 내가 두려웠던 건지 나를 놓아주게 되었다.


그 애와 보낸 여름에는 손목에 남아있는 빨간 줄을 가리기 위해 늘 손목 보호대를 차고 다녀야 했다. 어쩌다 그걸 엄마한테 들키게 됐을 땐, 정말 참담했다. 그것이 오로지 내 자의로 남겼던 자국이 아니었기에 뭐라 둘러댈 변명이나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고작 생각해 낸 핑계는, 아홉 살의 내가 받은 상처로 비롯된 우울증이었으며 나는 아직 그 시간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는 것. 차마 엄마에게 ‘엄마도 아는 걔 말이야, 걔가 나를 매일 괴롭히고 있어 살려줘’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잡혀있는 약점도 약점이거니와, 내가 당한 일들은 적당한 충격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기에 본능적으로 내뱉은 거짓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내게 눈물로 사과를 전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만 아버지에게 받은 첫 사과였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본인이 사랑받는 법을 모르게 된 이유들, 그래서 자신이 내게 준 상처들에 대한 사과와 함께 그는 빨간 줄이 여럿 그인 내 손목을 한참 들여다봤다. 아버지의 눈물은 처음 봤다. 이 사람도 눈물을 흘릴 줄 아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흔들림이 생겼다.


엄마는 그 후로 밤마다 내 손목에 약을 발라주곤 했다. 흉 지면 어쩌려고 그랬냐는 잔소리들과 시뻘건 눈으로 다신 그러지 말라는 말도 꼭 해주었다. 갑작스레 받게 된 관심과 애정들은 어딘가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민망하고도 징그러웠다. 관심 속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 애는 더 이상 내 손목을 건들진 않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곳에 멍을 새기곤 했다. 여름이 지나고, 겨울 무렵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차라리 나를 죽이는 게 어떠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스스로 죽겠다는 마음보단, 내가 죽고서도 어디에선가 내 약점을 인터넷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닐 그 애가 더 무서웠기에 극단적인 생각은 늘 접어둬야 했다.


그러던 내가, 미쳤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매일을 죽여달라 빌었다. 그렇게 때려서 죽겠냐, 조금 더 때리는 게 어떻겠냐라는 둥, 나를 죽이고 나면 꼭 네가 죽였다고 솔직히 말하길 바란다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마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말처럼 죽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자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다.


봄이 시작되기 전까지, 미쳐있던 내게 시달린 그 애는 괴롭히기를 멈췄다. 어쩌면 내가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지, 더 이상의 재미는 느끼지 않았던 것일지는 몰라도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었다. 단지 ‘호기심’이었다는 웃기지도 않은 변명과 ‘혹시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줄 수 있어?’, ‘그래도 너를 사랑했고, 사랑해’라는 소름 끼치고도 역겨운 말과 함께.




5312-5616번 서랍


모든 게 끝난 뒤에는, 한동안 놀라울 만큼 평화롭게 지냈다. 모든 게 없던 일인 것처럼 항상 신나 있었고, 심지어는 밖에서 노느라 집에서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봄에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운동을 다녔고, 봄과 여름의 경계에는 막냇동생도 태어났다. 집은 평화로웠다. 예전 같은 큰 소리는커녕, 아기를 키우는 여느 집처럼 아기 울음소리나, 아기를 보며 웃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여름에는 친구들과 바닷가에 다녀오거나, 타지 시내를 구경 다녔고 밤마다 운동을 핑계로, 체육공원에 모여 잡담을 했다. 가을에는 비가 오면 누군가 집에서 김치전을 구워 먹거나 당시 유행했던 라면 섞어 먹기, 2인 1조로 특이한 자세로 사진 찍기, 브루마블 같은 보드게임도 즐겨했다.


겨울에도 삼삼오오 모여 고깃집에서 밥을 먹고, 틈만 나면 사진을 찍었으며, 어린 동생을 다 같이 보러 우리 집에 놀러 온다던지, 고등학교 배정에 눈물 흘리는 일까지 모든 게 다 평범한, 그런 일상이 이어졌다. 가끔 그런 일상 속에서도 한 번씩 답답하다던지, 갑자기 현실감이 뚝 떨어진다던지 하는 그런 일은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즐거웠던 기억들은 하나씩 겹쳐져, 하나의 커다란 천이되었다. 끔찍했던 기억을 보관하는 서랍 위에 덮개처럼 얹어져 내가 무의식적으로 잊고 지내게 했다. 그러나 그 덮개 아래에는 내가 차마 그냥 지나쳤으면 안 되는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 기억들은 한데 모여 커다랗게 증식하는 중이었고, 덮개가 치워지면 언제든 나를 덮칠 수 있을 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내가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꼈다던가, 어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웃기 바빴고, 놀기 바빴다. 그것이 어떤 재앙의 잠복기라는 것을 모르는 채로 즐겁기만 한 열여섯을 지나고 있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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